[살며 사랑하며-김서정] 고양이 전입 신고식

입력 2017-03-02 17:21

한동안 제주살이를 하게 됐다. 설렘 반 불안 반으로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드디어 이사 결행. 무엇보다 신경 쓰인 게 십년 넘게 키운 고양이다. 어떤 작가의 고양이는 바닷가 산책도 하고, 비행기도 천하태평인 얼굴로 잘 타고, 사교성도 그만이던데(그래서 그 이야기로 반려인을 베스트셀러 작가로 키웠던데), 내 고양이는 바깥세상이 고문대기실로 보이는지 문밖만 나서면 사색이 된다. 그런 애를 태운 채 광주까지 달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완도로 가서 배를 타고, 제주항에서 새 집으로 간 거다. 그리고 낯선 집에 들락거리는 낯선 사람들. 사실 녀석은 사흘 가까이 고문을 받은 셈이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컸는지 녀석은 용변을 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자 심히 걱정이 됐고, 이틀이 지나자 내가 사색이 됐다. 바로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는 한 수의사의 명령성 충고가 더욱 불을 지폈다. 다행히 휴일에도 문을 연 동물병원이 가까이 있었다. 의사는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틀 반이나 용변을 못 봤으면 거의 사망이며, 최소한 토하고 못 먹고 못 움직이는 등 그 일보직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멀쩡히 잘 다니고 밥 잘 먹고 더 달라 조르기까지 하다니, 몰래 어디 눴던 게 틀림없다나. 하지만 엑스레이는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방광이 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부풀어올라 있었으니.

전신마취 시술이 필요하다고 의사는 말했다. 녀석의 나이, 혹시 모를 핏속의 칼륨 수치 등등이 시술 중 사망 요인이라고 세세히 설명했다. 별 도리 없이 동의서에 서명하고 혼자 병원을 나서는데, 제주의 하늘은 속절없이 푸르고 높았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전화를 받았다. 녀석이 오줌을 실컷 눴다는 것이다. 채혈하는 중에 진료대 위에, 의사의 옷에! 녀석은 달려간 나의 옷에도, 돌아오는 차 안에도 분풀이를 해댔다. 그리고 여태 나를 흘겨보며 손길을 피한다. 그래도 여전히 밥은 조르고, 보너스로 준 우유도 허겁지겁 핥으니 참 다행이다. 나 대신 녀석이 전입 신고식을 호되게 치러준 셈인가? 제주살이 앞날이 밝을 것 같다!

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