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탄핵 찬반 집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두고 갈라진 여론을 그대로 드러냈다. 탄핵반대 진영은 탄핵을 촉구하는 이들을 향해 ‘어둠의 자식’ ‘종북세력’이라며 증오를 쏟아냈다. 촛불집회는 주로 광화문광장 안에서 진행됐다. 광장이 경찰 차벽에 둘러싸여 촛불집회에 참가하려는 시민들이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탄핵반대 집회와 시간이 맞물린 탓이다.
촛불과 노란 리본 태극기
촛불집회는 지난 주말보다 인원이 적었다. 광화문광장이 꽉 들어차지는 않아 평소보다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집회가 진행됐다. 비가 내려 추워진 날씨에도 사람들은 촛불과 노란 리본이 달린 태극기를 들고 박 대통령 탄핵을 촉구했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오늘도 박근혜 세력은 총집결해 평화롭게 진행하는 촛불을 도발하고 있다”며 탄핵될 때까지 촛불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무대에 오른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열다섯 살에 끌려가 군인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갖은 전기고문을 당했다”며 “역사의 피해자가 살아 있는데도 박근혜정부는 말 한 마디 없이 한·일 합의를 맺었다”며 박 대통령을 구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파주에서 온 김지현(16)군은 “예전에는 대한민국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태극기를 들었는데 이제는 다른 뜻을 갖고 하나의 태극기를 든다”며 태극기의 의미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군은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박 대통령이 탄핵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본 집회가 끝난 오후 7시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탄핵’ ‘황교안 퇴진’ ‘특검 연장’ 등 구호를 외치며 정부서울청사를 지나 청와대 남쪽 방면으로 행진해 8시쯤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왔다.
구국하겠다는 태극기
탄핵반대 집회는 매우 고조된 분위기였다. 이날 집회는 세종대로사거리와 동대문, 서울역 일대 총 약 4.6㎞ 구간을 집회 장소로 신고한 대규모 집회였다. 오후 2시쯤 태극기집회 인파는 세종대로에서 숭례문, 종로2가까지 이어졌다.
정광용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 대변인은 “일제보다 더 참혹한 거짓으로 무장한 어둠의 세력들이 단돈 1원도 가져가지 않은 대통령을 탄핵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의 박 대통령 대리인인 김평우 변호사도 무대에 올라 “촛불이 누구냐. 복면을 쓰고 촛불과 횃불을 들고 나타나 박 대통령을 저주하는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오만한 법관(헌법재판관)들에게 무조건 승복합니다 이렇게 말해야만 선량한 국민이란 말인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헌재 결정에 불복하겠다는 뜻도 숨기지 않았다. 집회 참가자들도 격앙된 모습이었다. 경기도 안산에서 온 이모(77)씨는 “탄핵이 가결된다면 어디서든 뛰어내릴 각오를 하고 있다. 자살하고 싶을 것 같다”며 힘줘 말했다.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 이모(51)씨가 집에서 흉기를 이용해 왼손 새끼손가락을 자른 뒤 붕대를 감고 집회에 나타났다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일도 있었다. 이씨가 들고 있던 가방 속에서는 ‘대한민국 만세’ ‘나는 멈추지 않는다’고 쓴 혈서도 발견됐다. 이씨는 “좌파가 너무 심하게 굴어 안중근 의사처럼 3·1절에 독립운동한 것처럼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차벽 두고 곳곳에서 시비
경찰 차벽 틈 사이로 욕설과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종북 빨갱이들아” “늙어서 창피한 줄 알아야지” 등 원색적 비난을 주고받았다.
태극기집회에 참가한 한 고등학생은 “차벽 너머 있는 사람이 시비를 걸었다”며 경찰에게 소리를 질렀다. 차벽을 치우라며 한동안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다.
대학생 A씨(22)와 B씨(22)는 노란 리본이 달린 태극기를 들고 촛불집회에 가려다 탄핵반대 집회로 잘못 찾아가 봉변을 당했다. 한 남성이 이들의 머리채를 잡았다. 경찰은 두 학생을 보호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차벽 사이에 두고… “박근혜 구속” vs “종북 빨갱이”
입력 2017-03-02 00:02 수정 2017-03-02 0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