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59개 계열사들 각자도생… ‘전자’가 중심축

입력 2017-03-02 05:02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삼성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미지(未知)의 길’을 가게 됐다. 58년 만에 처음으로 사령탑이 사라진 만큼 내부에서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우선 16개 상장계열사를 비롯해 총 59개의 계열사를 가진 ‘거대기업’ 삼성이 가이드라인 없이 각자도생할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온다. 반면 삼성이 글로벌 기업 위상에 맞게 각 계열사 자율경영 체제를 도입한 것은 바람직하다는 시선도 있다.

역할과 힘 커지는 삼성전자

1일 재계에 따르면 앞으로 삼성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3개 계열사로 힘이 분산되지만 이 가운데 삼성전자가 중심축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 매출 201조8700억원을 기록해 5년 연속 매출 200조원대를 달성했다. 삼성그룹 전체 매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넘는다. 여기에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등 전자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삼성전자와 기타 계열사로 분류될 정도로 절대적이다. 또 9조원이 넘는 하만 인수 등 대형 인수·합병(M&A) 등도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신사업을 이끄는 주력 계열사인 만큼 삼성 내부에서 갖는 힘은 더 커질 전망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선임되면서 삼성전자가 중심이 될 것이란 관측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미래전략실 200여명은 어디로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만큼 소속 임직원 200여명은 계열사로 뿔뿔이 흩어진다. 임직원들은 일단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3개 주력 계열사로 배치된 뒤 인사 발령을 한 차례 더 받게 된다. 이번 주 내로 서초사옥 사무실을 빼고 임직원의 계열사 배치가 마무리된다. 이후 각 임직원들이 계열사에서 어떤 업무를 맡을지, 계열사 간 인력 배분을 어떻게 할지는 자율에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사장 인사도 계열사 이사회에서 자체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전략실에 있던 임원들이 각 계열사로 배치되면 계열사별 임원 수도 늘어나게 된다. 삼성 관계자는 “각 계열사에 임원 자리를 새로 만들지 기존 임원이 물러날지는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미래전략실 해체로 지침을 내릴 수 없어 각 계열사가 알아서 인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채 내년 기점으로 변화 있을 듯

그룹 차원의 공채는 올해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룹 공채 프로세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삼성그룹이 큰 틀에서 채용 제도를 관리했다. 채용 인원도 그룹이 필요한 인원을 계열사별로 가이드라인을 정해줬다. 수험생 혼란을 피하기 위해 올해는 공채를 유지한다고 하지만 내년에는 공채 없이 계열사별로 상시 채용을 할 가능성도 있다. 계열사별로 할당할 수도 없어 인원도 기존보다 줄어들 수 있다.

‘열린 채용’이 축소될 우려도 있다. 여성이나 고졸 출신, 장애인, 저소득층 등 상대적으로 소외된 수험생에게 기회를 주는 제도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1995년 삼성이 도입한 직무적성검사(GSAT)는 채용에 있어 균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원칙 아래 마련됐다. 이후에도 삼성은 꾸준히 장애인 공채, 고졸 공채, 저소득층이나 지방대 채용 비율 확대 등을 시험해 왔다. 하지만 향후 삼성그룹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계열사에 내려 보내지 않게 되면 그런 제도 역시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영권 승계·사회공헌 등 남은 과제

구속 기소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개편은 다소 늦춰질 수밖에 없게 됐다. 최소한 1심 재판 결과는 봐야 가늠이 가능할 전망이다.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되면 모든 게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삼성 내부에선 우선 이 부회장의 결백을 입증하는 데 주력하면서 경영권 승계 얘기는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 등 주주가치 최적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검토에 최소 6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24일로 예정된 주주총회에는 해당 안건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약속한 사회공헌은 아직 시기나 방법이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이건희 회장의 차명주식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입장이다. 삼성은 이 부회장 구속 여부와 별개로 쇄신 작업은 강도 높게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