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동남아 몰려간 은행들 ‘血戰’

입력 2017-03-01 17:47
시중은행이 ‘황금의 땅’ 동남아시아로 봇물 터지듯 진출하고 있다. 예대마진(대출이자에서 예금이자를 뺀 수익)이 5% 수준으로 고수익을 얻을 수 있어서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3개국이 혈투의 근거지다.

그러나 ‘레드오션’(경쟁 치열한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각국의 은행업 내부 규제가 거세지는 데다 현지 은행과 중국·일본계 은행의 반격이 만만치 않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한국계 시중은행의 동남아 영업망은 현지법인 15개, 지점 18개, 사무소 23개 등 총 56개 규모로 파악된다. 2년 전과 비교해 10곳 정도 늘었다.

KB금융 윤종규 회장은 지난달 중순 1주일 일정으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를 돌아보는 ‘남순강화’를 다녀왔다. 윤 회장은 베트남 웅우엔 쑤언 푹 총리를 만나 하노이 사무소를 지점으로 격상하는 방안, 은행·카드·증권 분야의 신규 진출 협조를 논의했다.

윤 회장의 행보는 베트남에서 외국계 은행 가운데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신한베트남은행을 다분히 의식한 것이다. 신한베트남은행은 지난해 베트남 내 영업망을 18곳으로 늘리는 등 ‘영토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베트남 현지법인 전환 및 보험판매 확대 등을 추진 중이다.

우리 시중은행이 동남아로 몰리는 이유는 단연코 고수익이다. 동남아는 높은 성장률을 지속하면서 금융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한한령(寒韓令·한류 금지령)으로 중국에서 실적이 저조해지자 동남아로 눈길을 돌리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너도나도 동남아 시장 확대에 뛰어들면서 레드오션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베트남에선 현지 은행들이 본점에 ‘한국데스크’를 열고 한국인을 고용해 한국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 인도네시아에선 한국계 은행들이 현지 소형은행을 인수·합병(M&A)해 소매금융 시장에 뛰어들었고, 중국계 은행들은 대형 은행을 M&A해 경쟁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얀마는 아직 외국계 은행에 소매금융을 금지하고 있어 영업실적이 없는 상태다. 한 시중은행의 글로벌 담당 부행장은 “베트남의 경우 한국기업이 들어오는 속도보다 한국의 은행이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빠르다”며 “한국계 기업 시장만 놓고 보면 벌써 레드오션이 됐다”고 말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세밀하고도 독특한 현지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산업은행 미래전략개발부 강명구 선임연구위원은 은행권 동남아 진출 관련 보고서에서 “핀테크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금융과 한국에서 강점을 가진 분야를 특화해 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 선임연구위원은 라오스 캄보디아 등으로 거점 영업망을 더 넓힐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