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를 위해 준비한 질의서는 검찰로 넘어가게 됐다. 대면조사 무산으로 던져지지 못한 질문의 수는 200여개다. 특검의 각 분야 수사팀이 박 대통령에게 직접 듣고 싶었던 신문사항이 빼곡히 담겨 있다. 질문이 박 대통령에게 던져질지, 서류 속에 묻힐지는 이제 검찰의 몫으로 남았다.
특검 관계자는 1일 “특검팀이 작성했던 박 대통령 신문용 질의서는 수사내용을 이첩하면서 함께 검찰에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200개가 넘는 질문이 담긴 예비 조서는 A4용지로 60쪽가량 된다. 참고인 형식으로 조사받길 원했던 박 대통령 입장을 반영해 각 문항에서 박 대통령의 호칭은 피의자가 아닌 진술인으로 작성됐다(국민일보 2월 10일자 1면). “대통령인 진술인은 왜 미르재단을 설립하려 하였나요”라고 묻는 식이다. 특검은 참고인 형식으로 진술조서를 받더라도 진술거부권을 고지한 뒤에 작성된 조서는 추후 피의자 신문조서로 활용해도 법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질의서 작성에는 여러 갈래의 수사팀이 집단으로 참여했다. 수사팀 지휘를 담당하는 각 특검보가 필요한 질문들을 작성한 뒤 취합했다. 박 대통령 측에서 조사시간에 제한을 두길 원했기 때문에 핵심적인 질문만 추려내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핵심이었던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여부를 중심으로 문화계 블랙리스트 개입 의혹 등 특검이 조사하던 모든 혐의에 대한 질문이 담겼다.
1차 대면조사 협의는 1월 하순부터 시작됐다. 조율은 윤석열 수사팀장이 맡았다. 당시에는 박 대통령 측의 요구사항을 특검이 거의 모두 수용했다.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를 성사시키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청와대 경내 위민관(비서동)에서 조사시간에 제한을 두고, 녹음·녹화 없이 비공개 조사를 진행하기로 협의가 됐다.
청와대는 지난달 9일로 예정했던 대면조사를 하루 앞두고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대면조사 일정이 사전에 보도됐다는 이유였다. 특검 관계자는 “심지어 조사 대상이 피의자라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성사를 위해 100% 양보했는데 마지막에 판을 깨버리니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특검팀 내부에서도 ‘진정성 있는 조사가 아니라 면담 형식으로 간단히 때우려는 것 아닌가’ ‘성사될 가능성 자체가 있기는 한가’ 등의 회의적인 반응들이 나왔다고 한다. 실제 박 대통령은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 때도 대면조사를 차일피일 미루다 끝내 회피한 전력이 있다.
1차 대면조사가 무산된 뒤 특검팀은 더 강경해졌다. 이때부터는 박충근 특검보가 청와대와 협의했다. 특검은 ‘녹음·녹화는 양보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조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박 대통령 측에서 조사 공정성에 시비를 걸 경우 등에 대비해 근거 자료를 마련해 두자는 취지다. 이미 1차 대면조사 무산으로 박 대통령 측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이었다. 더구나 최순실씨 측이 특검의 강압수사를 주장하는 등 수사 흔들기를 계속 시도했다. 녹음·녹화는 특검팀이 확보해야 할 최후의 담보였던 셈이다.
박 대통령 측은 특검팀이 내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부 유출이 우려된다면 녹음·녹화한 내용을 봉인하자는 제안도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협상 과정 내내 말을 아끼던 특검팀은 수사 종료일 하루 전 대면조사 최종 무산을 선언하고, 유감의 뜻을 밝혔다.
나성원 정현수 기자 naa@kmib.co.kr
특검이 밝힌 대면조사 무산 뒷얘기… 질문 200개 준비했는데 靑은 ‘면담으로 때우려는 듯’ 회피 행보
입력 2017-03-02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