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는 아래쪽 흙을 위로 옮기고 위의 흙을 아래로 내리는 일을 밤낮없이 합니다. 또 흙을 먹었다가 토해내 부드럽게 하는 등 땅을 비옥하게 만듭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열린 영화 ‘지렁이’(My little baby jaya) 시사회가 끝난 뒤 윤학렬(51·사진) 감독은 지렁이의 속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아무 쓸모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피조물의 하나로 나름대로 귀한 존재 가치와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영화는 성폭력 피해 사건을 바탕으로 장애인 인권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1주일 앞둔 13일에 개봉될 예정이다.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딸의 이야기가 관객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평소 청소년과 대학생·청년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윤 감독과 백성기 목사가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윤 감독은 학원 폭력으로 인해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살하는 청소년의 부모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청소년들의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게 되면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뇌성마비 지체장애인으로 ‘자야’의 아버지(원술)를 연기한 김정균은 “딸 가진 아빠로서 불안하다. 우리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연기로나마 학교폭력의 실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렇게 자녀를 양육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자야’역을 맡은 오예설은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너무 화가 나고 분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열심히 연기를 했다”면서 “장애인분들이나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윤 감독은 “사랑하는 딸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참고 살아내는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출했다”며 “영화 ‘지렁이’를 통해 학교 폭력이 줄어들고, 이로 인한 피해자가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성경 말씀으로 이사야서를 소개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사 41:14)
시사회는 지난 27일 서울, 28일 부산에 이어 2일 오후 7시 광주 금남로 광주극장에서 열린다. 공동기획자인 백 목사는 “흥행이나 상업 영화를 만들어 돈을 벌겠다는 마음보다 가치 있는 영화를 제작하려고 애쓰는 윤 감독을 보고 기획에 참여했다”면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비록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지렁이처럼 귀한 존재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지렁이’ 취급 받은 장애인 가족의 눈물
입력 2017-03-02 00:02 수정 2017-03-02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