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영화 흥행 릴레이 멈춰 세운 ‘다중인격남’과 ‘로건’

입력 2017-03-02 00:02
국내 박스오피스를 압도한 ‘23 아이덴티티’와 ‘로건’, 그리고 아카데미 특수를 타고 좌석점유율을 높여가는 ‘문라이트’의 한 장면(왼쪽 사진부터). 각 영화사 제공

한동안 이어진 한국영화들의 ‘흥행 릴레이’가 멈춰 섰다. 외화의 역습이 시작됐다. 할리우드에서 몰려온 기대작들이 차례로 주도권을 쥐는 양상이다.

외화 부진의 고리를 끊은 작품은 ‘23 아이덴티티’다.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는 오프닝 스코어 13만7000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개봉 이후 줄곧 점유율 30%대를 유지하며 7일 만에 12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을 제외하고, 해외 실사영화가 국내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른 건 지난해 11월 16일 개봉한 ‘신비한 동물사전’ 이후 처음이다. 한 주 만인 24일 ‘형’이 1위를 꿰찬 이후 ‘판도라’ ‘마스터’ ‘더 킹’ ‘공조’ ‘조작된 도시’ ‘재심’ 등이 흥행 바통을 이어왔다.

‘23 아이덴티티’는 23개의 다중인격을 지닌 남자 케빈(제임스 맥어보이)이 지금까지 나타난 적 없는 24번째 인격의 지시로 10대 소녀 세 명을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심리 스릴러. ‘식스 센스’(1999) 이후 부진을 면치 못했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건재를 알린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독특한 세계관을 흥미로운 설정으로 풀어낸 점이 주효했다.

이야기 구성 자체는 비교적 단조롭다. 그러나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가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결벽증이 있는 데니스, 고상한 여성 패트리샤, 9세 꼬마 헤드윅 등…. 미세한 표정 변화만으로 시시각각 다른 인물을 표현해내는 그의 연기력에 이견 없는 찬사가 쏟아졌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극장가에 불어 닥친 외화 바람에 힘을 실었다. 2관왕에 오른 멜 깁슨 감독의 ‘핵소 고지’(편집상·음향효과상)와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맨체스터 바이 더 씨’(남우주연상·각본상)가 다시금 관심을 모았다. 초유의 수상번복 해프닝을 빚은 작품상의 주인공 ‘문라이트’에 대한 주목도는 특히 치솟았다. 이전 170개 수준이던 상영관 수가 추후 확대될 예정이라고 이 영화 수입사 측은 전했다.

‘23 아이덴티티’가 넘겨준 흥행 바통은 지난 28일 전야 개봉한 ‘로건’이 이어 받았다. 언론 시사회 이후 쏟아진 호평 속에 20% 중후반대의 높은 예매율을 유지하고 있다. 경쟁작은 조진웅 주연의 심리 스릴러 ‘해빙’ 정도다.

‘로건’은 ‘엑스맨’(2000)부터 17년간 9번의 작품으로 이어진 울버린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히어로로서의 능력을 잃어가는 로건(휴 잭맨)이 돌연변이 소녀 로라(다프네 킨)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펼치는 최후의 대결을 그렸다. 휴 잭맨이 연기하는 마지막 울버린이다. ‘더 울버린’(2013)을 연출했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함께했다.

전 세계적으로 단단한 마니아층을 보유한 ‘엑스맨’ 시리즈는 한국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2014년 5월 선보인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국내 관객 430만명을 동원하기도 했다. 개봉 전 열린 ‘로건’ 라이브 컨퍼런스에서 휴 잭맨은 “그동안 한국 팬들이 ‘엑스맨’ ‘울버린’ 시리즈를 많이 사랑해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휴 잭맨은 “이번 작품에서는 슈퍼히어로의 모습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깊은 내면 연기를 할 수 있어 기뻤다. 혼신의 힘을 다했기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