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남해에선 지금 ‘모래전쟁’ 불길

입력 2017-03-02 00:00

남해 바닷모래 채취를 둘러싼 수산업계와 건설업계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양측의 물리적 충돌까지 우려된다. 정부는 이를 중재하지 못하고 미봉책만 내놓으면서 오히려 갈등을 부채질하는 양상이다.

1일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전국어민대표단은 전날 경남 창원 수협지역본부에서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남해에서 바닷모래 채취가 계속될 경우 해상시위 등 물리력을 동원키로 결의했다. 감사원 감사청구로 대응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어민대표단은 정연송 남해 배타적경제수역(EEZ) 모래채취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전국 수협조합장과 공노성 수협중앙회 대표이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앞서 어민대표단은 해양수산부와 국토교통부를 항의방문해 입장을 전달했다. 해수부 청사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표단은 “해수부의 골재채취단지 지정연장 동의 결정에 대단히 실망했다”면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바닷모래 채취가 근절될 때까지 맞서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국책사업에 쓰일 건설용 모래의 물량 확보를 목적으로 2008년부터 남해 EEZ에서 한시적 모래 채취를 허용했다. 하지만 건설업계 요구로 사용처가 민수용으로 확대됐고, 채취 기간도 네 차례 연장됐다. 남해에서만 지난해까지 9년간 총 6217만9000㎥의 바닷모래가 채취됐다. 연간 채취 물량은 2008년 280만3000㎥에서 2016년 1167만1000㎥로 4배 증가했다. 물량의 85.4%는 민수용으로 공급됐다.

골재채취로 해양생태계가 파괴되자 어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에 지난달 중순 이후 바닷모래 채취는 중단된 상태다. 그러자 이번엔 건설업계가 각종 공사에 차질이 빚어진다며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나섰다.

해수부는 모래 채취량을 1년간 650만㎥로 제한하는 타협안을 지난 27일 협의의견 형식으로 국토부에 통보했다. 해수부가 1년 연장이라는 ‘땜질식 처방’을 들고 나오자 어민들은 “해수부가 골재채취단지 지정연장에 동의해 우리의 뒤통수를 쳤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또 해수부 발표에는 연도별 감축안이나 골재원 다변화 계획, 어민 보상책 등 실효성 있는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대부분 대책은 연말까지 구체화하겠다는 정도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윈회 위원장 김영춘 의원과 국토교통위원회 최인호·전현희 의원 주최로 지난 22일 열린 바닷모래 채취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국토부 관계자는 “어민들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반대하는지 이해가 어렵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민 측은 “골재채취가 곧 끝날 것처럼 말하며 연장을 반복하던 국토부가 적반하장 식으로 나온다”며 격분했다.

대형선망수협과 경남 14개 수협조합장은 지난달 27일 창원지검 통영지청에 골재채취법 위반 혐의로 한국수자원공사 전·현직 사장과 19개 골재채취업체 대표를 고소하기도 했다.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갈등을 매듭지을 대책을 마련해보겠다”고 말했다.

세종=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