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야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此)로써 자손만대에 고하야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98주년 3·1절을 맞아 고등학교 때 배웠던 기미독립선언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일제의 폭정에 맞서 우리 조상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그날 대내외에 선언한 내용인데 지금 읽어보아도 명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정국이 종착역을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내다보며 기미독립선언문을 고쳐 써보았다.
“우리는 이번에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과 대한민국 국민이 주권자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전 세계에 알려 자유민주주의의 대의를 밝히고 자손만대에 알려 국가의 자존을 높이고 민심을 받드는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우리는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국민주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고 ‘시민자치’의 가능성을 보았다. 지난 4년간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는 군주주권에 가까웠고 국가통제 방식으로 시민의 자율성을 옭아맸다. 블랙리스트가 그 증거다.
세계는 우리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라며 치켜세웠지만 이번 탄핵소추와 특검 수사를 통해 대기업과 정권의 유착이라는 산업화의 폐해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러나 한편으론 ‘광장민주주의’라는 직접민주주의 형태의 시민정치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면서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10일이나 13일로 예상되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분수령이 될 것이다.
‘82일, 20회 재판, 26명 증인 신문, 5만여쪽의 수사기록 검토.’
지난달 27일 최종 변론까지 헌재가 숨 가쁘게 달려온 탄핵심판을 숫자로 정리한 것이다. 헌재는 28일부터 최종 선고를 위한 평의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이 최종 변론 때 제출한 최후진술 의견서를 읽어봤다. 그는 “정치에 입문한 이후 대통령으로 취임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도 개인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바른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영수 특검팀은 28일 수사를 마무리하며 박 대통령을 ‘뇌물수수 피의자’로 입건해 검찰로 이첩했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해 박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할 경우 검찰이 곧바로 수사에 돌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 약속했던 검찰과 특검의 조사를 끝내 외면했고 헌재에도 출석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의견서만 냈다. 의견서 내용이 지지자들에게는 호소력이 있겠지만 건전한 상식과 법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특검 수사와 최순실 재판에서 드러난 증거들과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국민이 양분돼 격하게 대립하고 국가는 통치권 부재로 마비된 상황에서도 본인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는 대통령을 보면 답답함을 넘어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이번 헌재의 탄핵심판은 박 대통령의 파면 여부 결정을 넘어 최고통치자에 의해 훼손된 헌법질서를 바로잡고, 대내외에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헌법적 가치와 정의를 선포하는 의미가 있다. 역사적인 결정이 될 이번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문이 기미독립선언문에 버금가는 정유년 국민주권선언문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재중 사회2부장 jjkim@kmib.co.kr
[데스크시각-김재중] 정유년에 쓰는 국민주권선언문
입력 2017-03-01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