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광저우 청사 위치 첫 확인

입력 2017-02-28 21:56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38년 7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 청사로 사용했던 중국 광저우 동산구의 ‘동산백원’의 당시 모습. 주광저우 총영사관 제공
일반인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는 현재의 모습. 주광저우 총영사관 제공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광저우(廣州)에 잠시 머물 당시 사용하던 청사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한때 청사는 철거돼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료 재검토 결과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광저우 한국총영사관이 28일 밝혔다.

임정 청사 명칭은 ‘동산백원(東山柏園)’으로, 주소는 광저우시 동샨(東山)구 쉬구위안(恤孤院)로 12호다. 옛 문헌에는 건물 주소가 쉬구위안로 35호로 기재돼 있었으나 지난해 1월 광저우시가 “35호 동산백원의 현재 주소는 12호이며 건물이 현존 중”이라고 확인했다.

임정은 1919년 4월 상하이(上海)에서 출범한 후 항저우(杭州), 전장(鎭江)을 거쳐 1932년 중국 국민정부 수도였던 난징(南京)에 자리를 잡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해 그해 말 난징이 함락되자 임정은 창사(長沙)로 피란을 떠났으며 이듬해인 1938년 7월 22일 다시 광저우로 옮겨갔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대가족 일행보다 하루 먼저 출발해 광주(광저우)에 도착했다. 이전부터 중국 군사 방면에 복무하던 이준식, 채원개 두 사람의 주선으로 ‘동산백원’을 임시정부 청사로 하고 아세아 여관에 대가족 전부를 수용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하지만 임정은 2개월 만에 다시 짐을 꾸려야 했다. 중국군이 연패해 광저우마저 일본군의 폭격을 받게 되자 임정은 그해 9월 19일 인근 도시 포샨(佛山)으로 떠났다. 임정은 다시 류저우(柳州)와 치장을 거쳐 1940년 9월 충칭(重慶)으로 옮겼고 1945년 11월 환국할 때까지 이곳에서 활동했다.

지금까지 국내 학계에서는 임정 광저우 청사가 도시계획에 따라 철거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에 총영사관이 광저우시 문화국과 함께 옛날 지도와 문헌을 분석해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특히 1928∼29년 사이 이 건물을 쓰던 중앙연구원 역사언어연구소(현재 대만 소재)에서 입수한 1층 현관 사진을 현재 모습과 대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동산백원 건물은 현재 노동자 등 저소득층의 거주지로 쓰이고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정부는 중국 측과 건물의 보존 방안 등을 협의할 계획이다. 광저우 총영사관은 “이번에 광저우 임정 청사를 새로 발굴함에 따라 그간 공백으로 남아 있던 중국 화난지역에서의 임정 역사를 재조명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