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2시간을 허락했지만, 양측의 최후진술은 결국 6시간을 훌쩍 넘겼다. 선고 전 재판관들을 대면하는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법조인들의 태도는 절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재판관들은 다소 거친 발언이 나와도 크게 제지하지 않고 끝까지 들으려 했다. 무거운 말들이 쏟아지는 와중에 심판정 곳곳에서는 흥미로운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했다.
오후 2시 최후진술의 포문을 연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국민이) 자유와 정의 수호의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 왔다”는 대목에서 감정이 북받친 듯 목소리가 떨렸다. 그가 잠시 숨을 고르며 물을 마시자 심판정 내부의 주목도는 높아졌다. 권 위원장의 뒷모습만 볼 수 있던 국회 측 대리인들은 옆 사람을 보고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권 위원장이 눈물을 흘리는지 묻기도 했다.
각자대리를 표방하는 박 대통령 측은 최후진술을 시작할 때 다소 산만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최후진술 순서가 합의됐느냐고 묻자 김평우 변호사는 “우리끼리 합의가 돼 있다. 순서는 알아서 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중환 변호사는 “합의되지 않았다. 순서는 재판장이 정해 달라”고 말했다.
눈길을 끈 최후진술은 단연 ‘당뇨’ 발언으로 화제가 됐던 김 변호사의 변론이었다. 김 변호사는 재판부가 아닌 방청석을 향해 섰고, 이 대행으로부터 “재판부를 보고 발언하라”는 주의를 받았다. 이후에도 계속 재판관들에게 등을 보였다가 바로 고쳐 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탄핵소추사유에 적용법령이 너무 다양하다”는 발언을 잇자 맞은편의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김 변호사는 발언대에 들고 나온 종이들을 바닥에 떨어뜨려 허리를 굽혀 줍는 부산한 모습도 보였다.
소추위원 대표인 권 위원장을 향해서는 “탄핵소추 내용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지금쯤은 철회하셔야 할 텐데…”라며 예사말이 섞인 최후진술을 했다. 권 위원장은 휴정 시간을 이용해 김 변호사를 향해 걸어갔다. “김 변호사님, 법사위원장이 탄핵소추안 만든 게 아닙니다. 제대로 알고 말씀하셔야지.” 김 변호사는 “아니, 소추안에 이름이 써 있으니까 그렇지”라고 답했다.
박 대통령 측은 국정농단 사태를 적극적으로 보도해 온 언론을 마뜩잖아 했다. 변론기일 중 “언론보도는 증거가치가 없다”는 말도 했다. 정장현 변호사는 “본 사건을 촉발시키고, 현재까지도 편향적인 보도를 내 보내고 계시는 많은 언론인 여러분에게도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비아냥댔다. 이때 서석구 변호사 등 박 대통령 측 변호사 다수가 웃었다.
서 변호사는 이후 자신의 순서가 되자 국내 언론이 북한 노동신문으로부터 극찬을 받는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하지만 이 주장은 이른바 ‘가짜뉴스’에 근거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서 변호사는 자신의 최후진술을 마친 뒤 대심판정을 빠져나갔다. 그는 헌재에 나올 때에도 태극기를 뒤집어쓰고, 탄핵기각 집회 인파 속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재판부는 무표정했지만, 김 변호사가 세월호 참사와 얽힌 탄핵소추를 비판할 때 다소 언짢은 기색이 엿보이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 속에 침묵의 자유도 있다”며 “‘노코멘트’가 헌법 위반이냐”고 반문했다.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파고드는 건 문제라는 비난이었는데, 헌재는 박 대통령에게 기억을 되살려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김 변호사의 발언이 계속되자 김이수 재판관이 이 대행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이경원 나성원 양민철 기자 neosarim@kmib.co.kr
변론 순서도 못짠 朴측… “재판장이 정해 달라”
입력 2017-02-28 18:19 수정 2017-02-28 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