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비정상(非正常)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이었다며 “죄가 되느냐”고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 측이 첫 재판에서 주장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박근혜정부의 대표적 국정과제다. 정부가 문화예술단체 등을 좌우파로 나눈 뒤 우파에 지원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다소 황당한 변론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 심리로 28일 열린 김 전 실장 등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변호인인 김경종(63·연수원 9기) 변호사는 “이 사건은 박 대통령의 문화정책에 이른바 좌파 세력이 직권남용이라는 잘못된 논리로 접근하는 정치적 사건”이라며 “대통령의 문화예술정책이 범죄가 될 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거치며 진보 세력에 편향된 정부 지원을 균형 있게 집행하려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하려는 것이 직권남용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전 실장 측은 이날 A4 9장 분량의 석명(釋明)요구 신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김 변호사는 석명 사항 10여개를 낭독하며 “김 전 실장의 어떤 행위가 직권남용·강요죄에 해당하는지 공소장에 특정돼 있지 않다”며 “최순실씨와 김 전 실장은 만나거나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왜 공범이라고 돼 있는지 밝혀 달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 측 정동욱(68·연수원 4기) 변호사는 “구속돼 법정에 있을 사람은 김 전 실장이 아니라 직권을 남용한 특별검사”라며 “나이가 80살이 다 된 분이 심장에 스텐트(심혈관 확장장치) 8개를 박고 한 평 남짓한 방에서 추위에 떨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용복 특검보는 “나중에 서면을 통해 답변하겠다”며 대응하지 않았다.
김 전 실장과 함께 기소된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측도 혐의를 부인했다. 조 전 장관 측 김상준(56·연수원 15기) 변호사는 “조 전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 지위에 있긴 했지만 블랙리스트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과오도 가볍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김 전 실장과 상반된 공판 전략을 보였다.
구속 상태인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준비기일에 모두 불출석했다. 조 전 장관의 남편인 박상엽 변호사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불구속 기소된 김상률(57)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김소영(50) 전 청와대 비서관만 출석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재판부가 직업을 묻자 이들은 입을 모아 “숙명여대 교수”라고 답변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김기춘 측 “블랙리스트, 비정상의 정상화” 억지
입력 2017-02-28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