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의 열 명 중 아홉 명이 도시에 살고 있다. 도시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며, 혁신의 산실로서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시는 사람이 살기 좋아야 한다. 정부가 더 이상 대규모 신도시 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이래 도시 개발은 기존 도시 내에서 소규모로 추진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여파로 재개발·재건축시장이 요동쳐 왔고 최근 들어서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잠실주공5단지 등 재건축아파트의 층수제한을 둘러싼 논란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재건축조합이 원하는 50층 재건축과 서울시의 35층 제한이 서로 맞서는 배경은 결국 사적 개발이익과 공공복리가 상충되기 때문이다. 재건축조합 관점에서는 사업비용의 조달방안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현실에서 개발이익이 재건축비용을 조달할 유일한 수단이다. 그런데 개발이익은 조합원 외의 주택 및 상가의 일반분양 물량에서 나올 수밖에 없으므로 개발밀도(용적률)를 높여 이를 극대화하기 원한다.
반면 도시정부 관점에서는 도시가 제 기능을 발휘할 적정용적률이 얼마인가가 판단 기준이 된다. 이것은 도시기본계획 혹은 도시장기발전계획에 반영되며, 해당 지역의 토지이용을 비롯하여 도로 및 주차, 경관, 교육시설, 상하수도와 같은 도시기반시설용량 등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재건축층수를 둘러싼 민간과 공공부문 간의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위험하고 불쾌한 낡은 아파트를 다시 지어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생활을 영위토록 하는 것도 중요하고, 과도한 개발로 말미암아 혼잡과 공공서비스 부족과 같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만든다면 그 문제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노후 아파트의 재건축과 관련된 문제는 서울시뿐 아니라 모든 도시의 공통적인 문제로 정부는 물론 도시정부 차원에서도 재건축사업과 관련된 몇 가지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먼저 개발이익에 의존한 재건축사업에서 벗어날 제도적 대응 방안이다. 지금과 같이 용적률의 상향 조정으로 재건축사업을 추진해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 등과 같은 주택수요 감소요인으로 개발이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면 지금으로서는 대안이 없다. 한시바삐 재건축사업의 재원마련 대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재건축에 대한 정책적 우선권을 높여야 한다. 재건축은 재개발과 함께 세계적으로 권장되는 도시 내 충전식 개발방식(infill development)이다. 그동안 공기업들은 도시 외곽지역의 녹지를 수용하는 신개발에 치중해 왔다. 이 방식은 토지취득가격이 낮고 개발에 따른 민원이 적어 개발기간이 짧은 이점을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녹지훼손과 함께 공공서비스 공급비용 증가, 직주분리로 인한 에너지 소비 증가 등의 문제가 있다. 반면 민간 건설업체들이 주로 담당한 기존 도시 내에서의 재건축 혹은 재개발은 토지가격이 높은 데다 개발을 위한 주민 동의 등을 비롯한 복잡한 사업절차를 감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기존 도시시설 이용률을 높이고 직주근접을 구현하는 이점이 있다.
대규모 신도시 건설 포기선언을 한 기조가 유지된다면 신개발보다 재개발·재건축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공부문 개발이 토지이용 변경권한을 이용하여 복잡한 내부충전 개발보다 외곽지역의 신개발로 편한 길을 택해 왔다는 비판에서도 벗어날 때가 됐다.
김재익 계명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경제시평-김재익] 원활한 재건축사업을 위해
입력 2017-02-28 1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