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우정사진

입력 2017-02-28 17:25

결혼을 앞둔 친구가 내게 ‘우정사진’을 찍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 친구가 요란한 촬영을 싫어해서 ‘스드메’ 패키지를 생략한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튜디오에서 우정사진을 찍자고 하는 게 좀 의외였는데 나중에야 친구는 우정사진에 대해 잘 몰랐다고 했다. 반명함판 사진까지는 아니더라도 결혼사진처럼 거창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우리가 우정사진 시장을 너무 얕잡아봤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옷을 몇 벌씩 갈아입으며 찍는 건 우리 취향이 아니라 최대한 간단한 걸 골랐는데도, 촬영하는 동안 집중력이 금세 흐려졌다. 정신은 말짱했는데 뭐랄까 얼굴 근육이 벌써 나태해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고난도의 포즈까지. 이를테면 팔짱을 낀다, 서로를 꼭 안아준다, 같은 것. 그런 건 기온이 영하 10도쯤 되거나, 한 명이 만취했을 때나 적용되는 동작이었는데 말이다. 압권은 “언니들! 이제 서로 바라보며 말해요, 우리 예쁘지 않니?”라는 주문이었는데, 순간 우리 표정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런 말만은!’ 수준이었다. 결국 폭소로 둘 다 못생겨졌다.

액자 컷 한 장을 고르기 위해 100여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는데, 서로의 닮은 구석을 찾아낸 건 덤이었다. 생김새보다도 표정이나 행동이 더 그랬는데, 주로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나타났다. 폭소가 터졌을 때, 우리의 팔다리 동작이나 표정이 마치 안무를 짠 것처럼 똑같았다. 우정사진 촬영에서 “두 분은 어떻게 친구가 됐나요?”라는 질문은 매뉴얼일 텐데, 그게 계속 잔열을 남기고 있다. 우리는 “(집이) 같은 방향이어서요”라고 대답했는데, 곱씹어볼수록 ‘같은 방향’의 의미가 확장되는 것이다. 18년 동안 우리는, 단지 물리적 방향 이상의 무언가가 같다는 것을, 같은 별을 길잡이 삼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정은 어쩌면 사랑보다 담백해서 어떤 표현을 자주 생략하게 되지만, 그래도 불쑥 고백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우연한 선택의 결과들 중에 널 만난 걸로 충분하다 싶은 그런 장면이 꽤 있다고, 말이다.

윤고은(소설가),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