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중지 골절로 4개월을 고생했다. 손가락 4개를 묶는 하얀색 깁스를 한 달 했고, 검지와 중지만 모은 초록색 깁스를 또 한 달 했다. 어둠 속에서 무거운 물체를 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부주의가 빚어낸 불상사였다. 나이 들면 매사에 조심해야 하는 데도 아무 생각 없이 덜렁댄 나를 수없이 책망하면서도 꿋꿋이 견뎠다. 우리 세대는 참고 버티는 데 선수 아닌가.
손가락 부상이 가져온 생활의 변화는 컸다. 샤워를 못하고, 술을 못 마시고, 핸들을 놓고, 자판을 못 치니 이런 불편이 없었다. 그렇게 답답한 시간을 보내던 중에 김형석 교수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젊었을 때 그의 책 ‘사랑과 영원의 대화’를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거니와 98세 노인의 체력과 지력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과연 그는 원고도 없이 1시간 반을 꼿꼿한 자세로 청중을 웃기고 울렸다. 저자 사인회 시간에 악수를 청했더니 보통 노인의 악력이 아니었다.
강연 내용은 미디어에 소개된 것처럼 “인생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도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 “삶의 목표는 사랑”이라는 교훈적 메시지가 주를 이루었다. “준비한 내일과 그렇지 않은 내일은 다르다”는 이야기도 강조했다. 그는 50세에 80세를 예비했다고 하니 “나이 60세부터 75세까지가 가장 아름다웠다”고 자신 있게 회고할 수 있는 것이다.
연초에 SNS를 달군 중국 모델 왕더순(王德順) 노인의 영상도 놀라움을 안겨줬다. 81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잿빛 머리칼을 휘날리고, 눈빛은 날카로웠다. 거기에다 떡 벌어진 어깨, 탄탄한 복근, 곧추선 척추, 그리고 런웨이를 걷는 당당한 걸음걸이와 호방한 웃음을 자랑했다. 50세에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해 몸을 만들기 시작하니 70세에 복근이 생기더라고 했다.
김 교수가 미래를 준비한 50세나 가장 보람 있었다는 60세 주변의 중장년층은 오늘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베이비부머로 일컬어지는 1955∼63년생만 해도 714만명, 인구의 14.6%, 서울의 경우 20%가 넘는다. 대부분 현업에서 밀려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도 어정쩡한 나이지만 간단하게 물러날 태세가 아님이 분명하다. 주변을 보면 과거의 경험과 지금의 열정을 바탕으로 인생 2막을 힘차게 열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 50, 60대 중장년은 뉴미디어를 능숙하게 다루며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평일 등산으로 시간을 죽이는 대신 강좌에 등록해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에 맞는 자신의 일을 찾는다. 이름 하여 ‘액티브 시니어’ 혹은 ‘NO老족’. 서울시가 최근 만든 50플러스재단에 가면 인생재설계, 커리어모색과 같은 알토란같은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개저씨’나 ‘노인충’ 소리는 듣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자기 삶을 충전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을 양분하고 있는 촛불과 태극기 속에서도 이들 젊은 노인들이 있어 평화가 유지됐다. 이들의 생각은 견실하다. 진영의 논리를 경청하되 매몰되지 않는다. 작은 자극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분별력과 인내심이 있고, 성장기에 체득한 가치와 정신을 잊지 않는다.
독재의 악행과 경제발전의 공로를 비교할 줄 알고, 성장과 복지, 안보와 인권, 공동체와 개인의 균형을 추구한다. 악다구니 쓰며 자신의 말만 내뱉고 귀를 닫는 꼰대와 다르다. 탄핵 깃발 속에 슬며시 자신의 이익을 그려 넣는 부류와도 다르다.
나는 이 ‘젊은 어른’들에게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본다. 이들이 중심을 잡으면 나라가 바로 선다.
손수호(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청사초롱-손수호] 젊은 노인들의 선택
입력 2017-02-28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