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접수 이후 3차례의 준비절차기일과 17차례의 변론기일 동안 양보 없는 공방을 벌였던 국회 소추위원 측과 박근혜 대통령 측은 27일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기일을 정반대 입장으로 마무리했다. 국회 측이 “국민의 이름으로 박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고 역설한 반면 박 대통령 측은 “탄핵소추사유는 어느 모로 보나 이유가 없다”고 맞섰다. 박 대통령을 향해 국회 측은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고 중대하게 위배했다”고 비판했지만 대통령 측은 “아무런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날 양측의 7시간 최후 변론을 마지막으로 박 대통령 탄핵심판의 증거조사와 변론을 모두 마쳤다. 헌재는 13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대통령이 헌법질서를 크게 훼손했는지, 국민이 부여한 신임을 내팽개쳤는지 전인격적으로 살펴 결정문을 쓴다.
“국민은 분노했다”
오후 2시 열린 최종변론기일에서 먼저 최후진술을 한 쪽은 탄핵소추를 의결한 국회 측이었다.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가장 먼저 나서서 15분간 “국민이 만들어 온 대한민국을 민주주의의 적(敵)들로부터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권 위원장은 “이번 탄핵심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제1의 공복인 피청구인이 헌법을 준수하고 대통령의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린 일련의 행위에 대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위임한 통치권력을 공의에 맞게 행사하지 않고 피청구인과 밀접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만을 위해 잘못 사용했다”고 평가했다.
권 위원장은 “지난 몇 달 동안 국민들은 귀를 의심케 하는 비정상적 사건들을 매일 접하면서 분노와 수치, 그리고 좌절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것은 국민이 맡긴 권력이 피청구인과 비선실세라는 사람들의 노리개가 되었다는 분노였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자부심이 모욕을 당한 수치였으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책임질 줄 모르는 모습에 대한 좌절이었다”고 지적했다. 권 위원장은 “대통령의 잘못된 통치행위로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국민이 분열한 점이 안타까웠다”며 최후진술 도중 울먹인 이유를 설명했다.
국회 소추위원 측은 박 대통령이 취해온 태도를 비판하며 재판관들에게 파면을 요구하기도 했다. 황정근 변호사는 “피청구인은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 우리 사회를 뒤흔든다고 일축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거짓임을 누구나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잘못은 부끄러움이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때 고칠 수 있다”며 “대통령은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원칙을 확인해줌으로써 역사의 기록 속에 헌법의 가치를 선명히 아로새겨 달라”고 헌재에 촉구했다.
“촛불은 불순한 것”
박 대통령 측은 사실관계가 충분히 인정되지 않았고, 탄핵정국은 비합리적이라는 의견을 재차 강조했다. 박 대통령 스스로 검찰의 수사 결과와 언론의 문제제기를 모두 불신하는 의견서를 직접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허술히 제기된 탄핵소추 사유는 모두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헌재가 재판 진행을 서둘렀다는 불만은 이날도 계속됐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 이동흡 변호사는 “사실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장·왜곡된 언론 보도가 시민을 자극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촛불을 들며 시작됐는데, 순수한 분노도 있겠지만 특정 정치세력의 불순한 전략도 있다”고 주장했다. 서석구 변호사도 촛불집회를 두고 “범민련 남측본부와 통일의 그날까지 함께 투쟁하자고 선동했던 민주노총이 주도한, 대단히 불순한 것”이라고 폄하했다.
박 대통령 측은 스스로 철회했던 탄핵소추 절차의 적법성 문제를 다시 지적했다. 구상진 변호사는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를 두고 “심판의 대상을 명기하고 구체적 사실을 특정하지 않았다”며 “실질적으로는 백지를 낸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 다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통령의 법적 책임이 없다고 강변했고, ‘김수현 녹취파일’이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언론에 대해 모욕적인 언사를 보내기도 했다. 정장현 변호사는 최후진술 첫머리에서 “본 사건을 촉발시키고, 현재까지도 편향적인 보도를 내보내고 계시는 많은 언론사 여러분에게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비꼬았다.
국회와 대통령 양측은 탄핵제도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권 위원장은 “탄핵은 법치주의의 예외 없는 적용을 통해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의 근본 원칙을 확인해주는 장치”라며 “자신은 법 위에 군림한다고 착각하는 위정자를 겨누는 ‘정의의 칼’이 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이동흡 변호사는 “탄핵은 법전에 있는 것으로 충분하고 현실에서 일어나면 엄청난 갈등을 야기한다”며 “탄핵은 아주 예외적인 상황에서 사용하는 제재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임기가 만료된 후에 수사와 재판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원 나성원 양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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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이름으로 파면” “과장보도 시민 자극”… 마지막 ‘변론전쟁’ 팽팽
입력 2017-02-28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