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연기 익숙함 떨쳐내려 늘 몸부림치죠” [인터뷰]

입력 2017-03-01 05:00 수정 2017-03-01 17:11
‘싱글라이더’에서 녹슬지 않은 감성연기를 펼친 이병헌. 그는 “평범한 가장 역할이 ‘마스터’의 진현필, ‘내부자들’의 안상구 등 강한 캐릭터들보다 연기하기 편했다”며 “배우로 산지 꽤 됐지만 내 안에는 평범한 내가 있다”고 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아휴, 제가 무슨 시조새예요?”

배우 데뷔연차를 짚고 가려하자 이병헌(47)은 질색하며 농담으로 가로막았다. 무려 27년간 숱한 대표작을 만들 어낸 그다. 출연 작품 수는 본인조차 세어본 적이 없다. 그런 그에게도 ‘싱글라이더’(감독 이주영)가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공공연하게 “내 연기인생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영화”라고 밝혔을 정도로.

‘싱글라이더’는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한 가장(이병헌)이 모든 것을 잃을 뒤 아내(공효진)와 아들을 찾아 호주로 떠났다 충격적인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병헌은 극 중 증권사 지점장이자 기러기 아빠인 강재훈 역을 맡아 완벽에 가까운 감성연기를 펼쳤다. 별다른 대사 없이 눈빛 표정 몸짓만으로 인물의 고뇌를 온전히 전달해냈다. 시종 감정선을 유지하며 극을 끌고 가는 것 역시 그의 몫이었다.

‘내부자들’(2015) ‘마스터’(2016) 등 격한 액션물을 연달아 찍으면서 이처럼 섬세한 감성을 다루는 작품에 대한 목마름이 커졌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싱글라이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매료됐다. ‘맞다, 내가 원래 이런 걸 좋아했지’ 싶더라”고 털어놨다.

잔잔한 드라마 장르인지라 관객 평은 다소 갈리는 양상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반겼다. 이병헌은 “이 영화는 어중간하게 호응을 얻어 흥행하는 것보다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는 게 훨씬 좋은 것 같다. 단 몇 분에게라도 ‘인생영화’가 됐으면 한다. 나에게 그런 것처럼”이라고 했다.

“많이들 기억하시는 ‘번지점프를 하다’(2001) ‘달콤한 인생’(2005)도 사실 흥행적으로는 안 된 영화들이에요. 극장에서 내리고 나서 더 화제가 됐죠. 많은 관객들이 ‘싱글라이더’를 보고 감흥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이병헌은 늘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력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런 그도 이따금씩 매너리즘에 시달리곤 한단다. 이병헌은 “한 사람이 기쁨 슬픔 분노 등 몇 개의 감정을 새롭게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수많은 작품을 한 배우라면 더욱 그렇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늘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게 배우로서 놓쳐선 안 될 자세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계속 작품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몸에 익숙해진 것을 그냥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타성에 젖는다고 하죠. 그럴 땐 몸을 한번 털어버리려고 해요. 습관적으로 연기하고 싶지 않거든요. 리프레시(Refresh)가 필요해요.”

특별출연한 ‘밀정’까지 포함해 지난해 무려 네 작품을 선보인 이병헌은 올해도 바삐 달린다. 차기작들이 줄줄이 잡혀있다. ‘남한산성’ 촬영에 한창이고, ‘그것만이 내 세상’ 출연을 확정지었으며, ‘안시성’도 검토 중이다. “예전엔 ‘왜 이렇게 작품을 안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으면 안 할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우유부단해서(웃음).”

쉼 없는 ‘열일’ 행보에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세 살배기 아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서울에 있는 동안은 일정 사이사이 잠깐씩이라도 집에 들르려 해요. 그렇게라도 아이랑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요. 그래도 휴일에는 외출이나 외식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나중에 제가 긴 시간이 놀게 되면 원 없이 함께할 수 있겠죠(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