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해외 돈벌이’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북한 정찰총국이 대북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말레이시아에 위장업체를 차려놓고 군수품을 팔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정찰총국 산하 기업 ‘팬 시스템즈’가 말레이시아에 설립한 위장업체 ‘글로컴’을 거쳐 군사용 통신장비를 수출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7월 중국을 출발해 아프리카 에리트레아로 향하던 항공 화물을 경유지인 제3국이 수색했을 때 북한 군사용 통신장비와 관련 부품 45상자가 적발됐다. 이 군수품 판매자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본사를 둔 글로컴으로 파악됐다. 글로컴은 중국, 싱가포르에도 지사가 있다.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이 지난 24일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북한의 무기 수출 실태가 드러났다. 북한의 대북제재 회피 사례를 담은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제3국에 설립한 위장업체는 국제무기전시회에 참가하거나 최첨단 군수품을 판매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는 북한의 무기 수출을 금지한 2009년 안보리 결의안 1874호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실제로 글로컴은 현재 폐쇄된 말레이시아 홈페이지를 통해 군대와 무장단체를 위한 통신장비 30여종을 공급한다고 광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 패널은 보고서에서 “북한이 고도로 숙련된 요원을 통해 군수품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대북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찰총국 소속이자 팬 시스템즈 이사인 ‘양수녀’라는 인물이 2014년 2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통해 45만 달러(약 5억1000만원)를 밀수하려다 구금된 적이 있으며, 당시 양수녀는 이 돈이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자금이라고 진술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는 북한 해외 공관이 무기 수출과 돈세탁에 적극 개입한 정황을 드러낸다. 여기에 집권 통일말레이국민조직의 유력한 당료인 무스타파 야아쿱이 글로컴의 과거 사업 파트너로 지목됨에 따라 북한 정권과 말레이시아 정치권의 유착 논란도 불거진 상황이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北, 말레이에 위장업체 세워 군수품 판매
입력 2017-02-2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