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특검팀 중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암초'에 멈추고 말았다. 청와대 압수수색과 수사기간 연장이라는 고비마다 황 권한대행은 비협조로 일관했다. 특검팀은 박근혜 대통령 수뢰혐의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을 규명하며 순풍을 탔지만 수사기간 연장 불발로 90일(수사준비기간 포함) 만에 돛을 접게 됐다.
고비마다 ‘비토’ 놓은 황교안
28일 수사를 종료하는 특검팀이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은 청와대 압수수색 무산이다. 대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 공공·민간 영역을 가리지 않고 진행된 부정한 인사전횡 등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진원지는 청와대였다. 물증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이 꼭 필요했던 만큼 특검팀은 출범 직후부터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규철 특검보(대변인)는 27일 “법원에서 적법하게 발부된 영장을 집행하지 못한 점이 매우 유감스럽고 아쉽다”며 “향후 청와대 압수수색 승인 기준을 명확히 하는 쪽으로 입법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검팀과 황 권한대행의 불편한 관계가 시작된 것도 이 지점이다. 지난 3일 청와대 연풍문에서 5시간을 대치하다 물러선 특검팀은 황 권한대행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박 특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황 권한대행은 이 요청을 외면했다. 압수수색 승인 결정권한은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 있다며 발을 뺐다.
수사종료 11일 전 일찌감치 요청한 수사기간 연장도 황 권한대행은 거부했다. 주요 당사자가 기소됐거나 기소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수사가 진척돼 특검법의 주요 목적과 취지를 달성했다는 이유였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정에 따라 대선이 조기에 실시될 수 있고, 특검팀 수사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수사의 공정성을 문제 삼기도 했다. 황 권한대행이 박 대통령 수사를 반대하는 보수층을 의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특검보는 “정치적으로 편향된 수사를 하지 않았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악조건 속 최대 성과
특검팀은 짧은 수사기간과 청와대 압수수색 불발 등 악조건 속에서도 괄목할 만한 수사 성과를 냈다. 27일 현재까지 총 13명의 피고인을 재판에 넘겼다. 수사 종료일인 28일에는 최순실씨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등 10∼15명을 일괄 기소할 방침이다. 피고인만 최대 28명으로 역대 특검 중 최다 기록을 세웠다. 오히려 특검팀이 공소유지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핵심 성과는 박 대통령-최순실-삼성그룹 간 3각 뇌물구도 규명이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의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승계를 위한 지원과 삼성의 최씨 지원을 뇌물이라는 죄명으로 설명해 냈다. ‘대기업=강요 피해자’라는 앞선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프레임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특히 대통령과 재계 1위 총수가 주연인 이번 수사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였던 ‘정경유착’ 관행을 백일하에 드러냈다는 의미를 가진다.
수뢰 혐의자인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무산되고, 공여자인 이 부회장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되며 고비를 맞았지만 전방위적인 보강수사를 통해 증거를 보충하고, 법리적 공백을 메워냈다. 특검은 28일 이 부회장과 최씨, 최지성 부회장 등 삼성 임원진을 모두 재판에 넘길 방침이다.
소문만 무성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의 실체를 확인하고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한 점도 성과로 꼽힌다. 특검은 본격 수사에 착수한 직후부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정점으로 보고,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경위와 작동 메커니즘을 파헤쳤다. 두 사람을 비롯해 지시·작성·관리에 연루된 전·현직 공직자들을 전원 사법처리했다. 사건의 최정점으로 지목된 박 대통령 조사는 역시 검찰의 숙제로 남게 됐다.
이밖에도 최씨의 미얀마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개입과 최씨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학사비리, 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간 뇌물거래 등도 특검팀이 직접 매듭지었다. 이 특검보는 “검찰과 협조해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글=정현수 김현길 기자 jukebox@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고비마다 ‘황교안 암초’… 국정농단 미완의 특검
입력 2017-02-27 17:29 수정 2017-02-27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