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스펙 대신 성경 암송에 빠졌어요

입력 2017-02-28 00:09
‘2017 빛과진리교회 성경암송대회’ 참가자가 26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로 빛과진리교회에서 열린 본선에서 문제로 제시된 구절을 되뇌며 암송을 준비하고 있다. 빛과진리교회 제공
성경암송대회 참가자들이 두 눈을 감은 채 간절한 맘으로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있다. 빛과진리교회 제공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로 빛과진리교회(김명진 목사) 예배당엔 26일 긴장감이 맴돌았다. 1000여석을 가득 채운 성도들의 시선이 강단 앞에 선 한 청년의 입술에 꽂혔다.

“사도행전 13장 22절.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청년이 성경암송을 마치자 관객들의 시선이 진행자에게로 옮겨졌다. 2∼3초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을 깨트린 한 마디는 통과를 뜻하는 “아멘”이었다. 객석에선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교회에서 매년 2월 중순 진행하는 성경암송대회의 한 장면이다. 빛과진리교회는 개척 이듬해인 1996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단체전과 개인전을 번갈아가며 성경암송대회를 개최해 왔다. 올해는 성도 2000여명 전원이 개인전에 출전해 103명이 본선에 올라 경합을 벌였다.

성경암송은 출석성도 10명 중 8명이 청년인 이 교회의 핵심 동력이다. 김명진 목사는 “취업 전쟁터에서 스펙 쌓기에 매몰된 청년들일수록 세상이 정한 기준 때문에 큰 상처를 받곤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삶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확고한 자기중심을 가진 삶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회 성도들이 소지하고 있는 손바닥 크기의 암송구절 책자엔 ‘구원의 확신’ ‘교제’ ‘정직’ 등 주제별로 정리된 성경 구절 600여개가 담겨 있었다. 김 목사는 “성경공부, 셀모임 등 소그룹 활동을 할 때도 자연스럽게 성경을 암송하는 시간을 갖는다”며 “성도들의 약 80%는 200구절 정도를 암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회는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긴장감을 더했다. 대회규정은 엄격했다. 일점일획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암송할 구절을 제시받은 후 머뭇거리거나 암송 중 한 글자라도 틀리면 가차 없이 ‘탈락’을 알리는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관객들의 탄식이 뒤따랐다.

2009년 개인전 준우승을 차지한 뒤 2011년엔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 이범희(33)씨는 전통의 실력자다. 무대 아래서 만난 이씨는 “지난 일주일 동안 600여개의 주요 구절을 놓고 대회와 동일한 방식으로 시뮬레이션 해가며 연습에 매진했다”고 밝혔다. 이어 “모태신앙이지만 살아오면서 세상과 타협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성경을 암송하면서부터 ‘영적 견고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날 암송왕 반지(금 한 돈)와 상금 50만원의 주인공인 된 우승자 최명희(32·여)씨는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다고 생각하며 생활과 말씀을 접목해 암송하는 게 노하우”라며 “말씀과 삶의 일치를 위해 앞으로도 암송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말씀의 중요함이 한국교회에 더욱 확산되길 바란다”며 “성경암송 열풍이 불도록 총상금 1억원 규모의 전국 대회를 개최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