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존 입장만 되풀이한 박 대통령의 헌재 최후 진술서

입력 2017-02-27 18:28 수정 2017-02-27 20:43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종변론에 출석하지 않은 채 최후 서면진술서를 통해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수십분 분량의 진술서를 대리인이 대독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은 지난달 25일 인터넷 팟캐스트 ‘정규재 TV’ 인터뷰 이후 33일 만이다.

박 대통령은 “저의 불찰로 국민께 큰 상처 드려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좋은 뜻을 모아 설립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선의가 제가 믿었던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왜곡됐다. 단 한 번도 사익을 위해 또는 특정 개인의 이익 추구를 도와주기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남용하거나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국가 정책 차원에서 기업들과 공감대 속에서 이뤄졌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글로벌 기업의 부회장이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도 했다. 최순실씨에 대한 믿음은 경계했어야 했지만 최씨가 국가 정책 및 고위직 인사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최씨가 연설문 작성을 도와준 것은 맞지만 국정농단은 단연코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 핵심 증인들의 증언과 검찰 및 특검의 수사기록 등을 보면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의혹은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은 박 대통령과 최씨, 안 전 수석이 관여해 설립된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고,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은 유출된 기밀 문건에 대해 “대통령 뜻에 따라 최씨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최씨에 의한 인사 개입과 ‘블랙리스트’도 확인됐다. 이러고도 국정농단과 헌법유린이 결코 없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박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본인 입으로 밝힌 것은 다섯 차례에 불과하다. 이 모두 박 대통령의 일방적인 해명이었다. 약속했던 검찰과 특검의 대면조사에는 응하지 않았고 헌재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결국 박 대통령은 국민의 의문을 해소해줄 공식 절차를 밟지 않은 셈이다. 국민을 상대로 한 약속을 수차례 어기면서 자신은 억울하다고 주장하면 누가 이를 믿겠는가. 박 대통령은 특검으로부터 수사를 인계받게 되는 검찰 조사에는 당당히 임하길 바란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