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61·사법연수원 10기·사진) 대법관이 27일 6년 임기를 마치고 무거운 법복을 벗었다. 이 대법관의 퇴임으로 헌법재판소에 이어 대법원도 법관 결원 사태를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여파 속에 후임 대법관 인선 절차는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다.
이 대법관도 떠나는 순간까지 이를 우려했다. 그는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후임 대법관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떠나게 돼 마음이 편치 않다”며 “하루빨리 이런 상황이 끝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사건의 결론을 섣불리 내려두고 거기에 맞춰 이론을 꾸미는 방식은 옳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거기에 치밀한 논증을 거쳐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고 후배 법관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법해석을 맡고 있는 법관은 상충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의 서로 다른 측면을 모두 아우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형평을 이루기 위해선 허약한 쪽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단순한 기계적 균형은 형평이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헌법과 법률의 대원칙들이 구호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사법의 핵심임무는 각종 권력에 대한 적정한 사법적 통제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법관은 1983년 인천지법 판사로 임명된 이래 ‘여유’와 ‘배려’라는 두 가지 가치를 마음에 새기고 당사자의 처지를 이해하려 애썼다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대법원이 다양한 가치관을 반영해야 하고, 특히 사회적인 약자,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 색채가 짙은 대법원에서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의 목소리를 내온 대법관으로 꼽혔다.
이 대법관은 후임자 인선 과정을 지켜보지 못한 채 퇴임한 첫 대법관이다. 대법원은 통상 대법관 퇴임 2개월여 전에 신임 대법관 후보에 대한 추천을 받아 왔다. 추천을 통해 선정된 후보를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제청하고, 대통령이 이를 국회에서 동의 받는 절차를 거친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중순 대법관 후보 천거 공고를 내려 했지만, 탄핵안 가결에 따라 박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면서 대법관 인선 절차도 무기한 보류됐다.
이 대법관이 퇴임하면서 ‘8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헌법재판소에 이어 대법원마저 대법관 정수 14명 중 1명이 공석인 ‘13인 체제’로 전환됐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법 임무는 권력 통제 통해 국민의 기본권 보장하는 것”… 이상훈 대법관 퇴임
입력 2017-02-28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