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 잔혹성에 전방위 압박… 북-미 관계회복 요원

입력 2017-02-27 00:01 수정 2017-02-27 01:04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윤 장관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 및 군축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했다. 뉴시스

미국 내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탄도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암살 등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그만큼 악화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테러지원국 지정 요건이 까다롭고 자칫 북·미 대화 자체를 원천봉쇄할 수 있어 실제 지정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대북 정책을 어떻게 펼쳐갈지를 놓고 의견을 모아가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암살은 미국 강경파에 힘을 실어준 꼴이 됐다. 이미 탄도미사일 발사만으로도 강경파가 ‘선제타격론’을 제기하며 목소리를 키우던 차에 암살 사건까지 생기면서 테러지원국까지 거론할 빌미를 준 것이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연구원도 25일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김정남 암살사건을 계기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라는 의회의 압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미 미 행정부가 직접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기 위한 증거수집 등 조사활동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에서도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미 정부는 김정남 암살에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서 사용을 금지한 맹독성 신경가스 VX가 쓰인 것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제프 데이비스 미 국방부 대변인이 24일(현지시간) “VX를 미사일 탄두에 장착하면 그게 바로 대량살상무기(WMD)”라고 지적한 것도 자칫 북한의 화학무기가 핵과 미사일에 이어 또 다른 골칫덩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이번에 침묵하고 넘어갈 경우 북한의 화학무기를 용인하는 꼴이 될 수 있어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 정부는 일단 김정남 사건의 수사 추이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개입이 보다 명확해질 경우 테러지원국 지정 명분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테러지원국 지정 여론은 높지만 고려할 변수도 많다. 미 행정부가 특정국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기 위해선 ‘6개월 안에 반복적인 테러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충족해야 한다. 다른 테러 행위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또 북한이 법적으로 ‘자국민’인 김정남을 숨지게 한 게 국제테러에 해당하느냐는 논란도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순간 북·미 간 모든 대화가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향후 외교적 파장도 계산해봐야 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0년 천안함 폭침과 2014년 소니픽처스 해킹 당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런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북·미 관계는 더 냉랭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조심스럽게 제기되던 북·미 대화 가능성은 요원해졌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가 북한 외무성 최선희 북미국장의 미 입국 비자 신청을 거부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다음달 1∼2일 예정된 최 국장의 뉴욕 방문은 무산됐으며 양측의 ‘1.5트랙’ 대화도 불발됐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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