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27·은퇴)는 2005년 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슬로바키아·불가리아 대회)와 그랑프리 파이널을 제패하며 자신의 전성기를 열었다. 화려하게 은반을 수놓는 김연아의 연기에 반한 최다빈(17·군포 수리고)은 다섯 살이던 그해 스케이트를 신었다. 김연아를 우러러보며 꿈을 키웠다. 2007년엔 김연아로부터 직접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연아 키드’ 최다빈은 김연아가 유일하게 따내지 못한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고 ‘포스트 김연아’로 떠올랐다.
최다빈은 25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의 마코마나이 실내링크에서 열린 2017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68.40점에 예술점수(PCS) 57.84점을 합쳐 126.24점을 받았다. 지난 23일 쇼트프로그램에서 61.30점을 따낸 최다빈은 프리스케이팅 점수를 합쳐 개인 최고점인 총점 187.54점으로 중국의 리쯔쥔(175.60점)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발목 부상으로 빠진 박소연(20·단국대)을 대신해 이번 대회에 출전한 최다빈은 한국 첫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금메달을 거머쥐며 김연아 은퇴 이후 얼어붙었던 한국 은반을 녹였다. 김연아는 2007년 창춘 아시안게임은 부상으로,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대회는 휴식 차원에서 출전하지 않았다.
최다빈은 11세 때 트리플(3회전) 점프 5종을 구사한 ‘점프 신동’이었다. 2012년 만 12세에 국가대표로 뽑힌 최다빈은 2014-2015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동메달 2개를 따내 김연아 이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했다. 최다빈은 김연아의 길을 밟고 있다. 김연아가 졸업한 수리고에 재학 중인 최다빈은 지난해 김연아와 같은 소속사(올댓스포츠)에 들어갔고 김연아의 조언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최다빈의 매니저는 26일 “최다빈은 기술이 좋지만 표현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김연아에게 몸을 쓰는 법과 시선 처리 요령 등 원포인트 레슨을 받은 이후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다빈은 시니어 무대에 나선 이번 시즌 성장통을 앓았다. 두 차례 출전한 시니어 그랑프리에서 7위, 9위에 그쳤다.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최다빈은 쇼트프로그램 음악을 ‘맘보(Mambo)’에서 영화 ‘라라랜드’의 OST로 바꿨다. 승부수는 적중했다. 이달 중순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깔끔한 연기를 펼쳐 보이며 5위에 올랐다. 최다빈은 26일 “배경 음악을 바꾼 뒤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다빈은 또 한 번 소중한 기회를 잡았다. 발목 부상에도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김나현(17·과천고·13위)이 다음 달 29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2017 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출전을 포기하면서 대타로 이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티켓이 걸려 있는 중요한 대회다. 최다빈이 10위 안에 오르면 한국은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 두 명의 선수를 출전시킬 수 있다.
최다빈은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 있어 부담감이 있지만 후회 없이 만족스러운 경기를 하고 싶다”며 “(김)나현이가 발목 통증 때문에 힘들어했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선 함께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힘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아시안게임에서 대타로 대박을 친 최다빈이 또다시 행운을 살릴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대타 대박’ 최다빈, 김연아 향기 솔∼ 솔
입력 2017-02-2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