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김재천] 美, 대북협상 해도 놀랄 일 아냐

입력 2017-02-26 18:11

북한은 지난 12일 조기탐지가 어려워진 신형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감행했고, 다음날 해외를 떠돌던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을 백주에 살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형국이다. 한때 김정은과 햄버거협상도 가능하다던 트럼프는 대화는 이제 “늦었다”며 강경한 대북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역시 4차 핵실험 이후에는 역대 최강의 국제 대북제재 체제를 출범시켰고, 이를 유지 강화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방코델타아시아(BDA)급 금융제재에 초점을 맞춘 독자적 대북제재 행정명령을 발효했고, 인권문제를 적극 제기해 압박하며 김정은의 실상에 관한 정보를 대량 투입할 수 있는 법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미 양국의 확장억지전략협의체(EDSCG)를 신설해 미국 전략무기 상시 순환배치도 논의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더 나아가 대북 선제공격과 중국기업을 겨냥한 ‘2차 제재’를 새로운 정책옵션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우선 대북 선제공격은 정권 수뇌부를 제거하기 위한 참수작전이든 핵시설을 겨냥한 정밀타격이든 실행 가능성은 낮다. 엄밀한 의미의 ‘선제(preemptive)공격’은 임박한 적의 공격을 선제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군사행동이고, 국제법이 보장하는 주권국가의 자위조치이다. ‘예방(preventive)공격’은 적 군사력이 종국에는 중차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차제에 예방하기 위한 군사행동이다. 최근 거론되는 대북 선제공격은 사실 예방공격을 의미하는 것이고, 국제법상 적법 여부를 떠나 현실적이지 않다.

인정하기 싫더라도 북한은 미국의 예방공격을 억지할 수 있는 다양한 군사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군사자산 중 일부는 예방공격을 견뎌낼 것이고, 미국에 대한 효율적 보복공격을 감행하지는 못할지라도 한국을 대상으로 대규모 군사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한반도에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연루될 수 있는 전면전의 위험을 감수하려 할지는 미지수다. 미국 국민들이 당장에야 선제공격을 지지할지 모르지만 막상 해외 분쟁으로 국력을 소진하게 된다면 지지를 철회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역시 막강 군사력 구축을 호언하고는 있지만, 2011년 저서 ‘강인해져야 할 때(Time to Get Tough)’에서 확실한 승리가 보장될 때에만 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중국기업 대상의 2차 제재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가 강조한 바와 같이 중국의 셈법을 바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유도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핵을 방관한다면 중국에 심각한 전략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 과도한 ‘중국 때리기’로 일관할 경우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미·중 갈등이 증폭될수록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제고될 것이고, 북한을 감싸 안으려는 동력이 강해질 것이다. 4차 핵실험 후 오바마의 행정명령에는 2차 제재 조항이나 예방공격을 포함한 군사적 옵션이 정책 선택지에서 배제된 적이 없다. 단지 심각한 부작용을 우려해 추진하지 않았을 뿐이다.

최근 한국 일각에서는 트럼프는 오바마가 쓰지 않았던 강경책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현실적으로 쓸 수 있는 대북정책은 오바마의 제재·인권·정보·억지 대북정책 4종 세트를 유지·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일단 판을 완전히 흔들어 놓고 일괄 타결하는 통 큰 협상방식을 선호한다고 했다. 당장 북한과의 협상은 난망해 보이지만 일정 조건이 맞다면 협상으로 급선회한다고 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김재천(서강대 교수·국제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