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VX로 암살”… 독성, 사린가스 100배

입력 2017-02-24 17:42 수정 2017-02-25 00:49
화학전에 사용되는 치명적인 신경작용제 VX가 김정남 살해에 사용됐다고 24일 말레이시아 당국이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생산·사용이 금지된 ‘대량살상용’ 화학무기가 지난 13일 사람들로 북적이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단 1명을 죽이는 데 쓰인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부 산하 화학분석기관은 “(김정남) 시신의 얼굴과 눈 점막에서 검출된 화학물질이 VX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현지 경찰은 금지 물질인 VX가 어떻게 자국으로 반입됐는지 조사 중이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경찰청장은 이 VX가 북한과 관련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변을 피했다.

VX는 1997년 발효된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 따라 나라별로 매년 100g 이상의 생산·비축이 금지된 물질이다. CWC에 192개국이 가입했지만 북한은 가입하지 않았다. 북한은 VX를 포함해 막대한 양의 화학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다른 나라도 연구 목적에 한해 일정량의 VX 취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VX가 검출된 것만으로 북한 소행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VX는 황색의 미끌미끌한 액체로 특별한 맛도 냄새도 없다. 1995년 일본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테러에 사용된 사린가스를 비롯한 모든 신경가스 중에서 VX의 독성이 가장 강하다. 피부에 10㎎만 묻어도 사망할 수 있다.

워낙 치명적인 무기여서 1996년 제작된 미국 액션영화 ‘더 록’에서 악역이 샌프란시스코를 전멸시키겠다고 위협하는 도구로 VX가 등장했다. 주인공도 VX에 노출되지만 극적으로 해독제 주사를 맞고 살아난다.

일본 쇼와대학 사토시 누마자와 교수는 최근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김정남 얼굴에 무언가를 문지른 여성들이 VX를 크림에 섞어 사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 용의자 2명이 VX를 김정남 얼굴에 묻혀 사망케 한 것이라면 용의자 본인들은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냐는 의문이 생긴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 브루스 골드버거 교수는 “VX는 소금 몇 알갱이 크기의 극미량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며 “VX에 노출됐을 암살자 2명이 중독 증상을 안 보인 게 흥미로운데 즉각 해독제를 맞았다면 멀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말레이시아 경찰은 여성 용의자 2명 중 1명이 범행 이후 아팠고 구토를 했다고 밝혔다.

김정남은 피습 후 공항 직원에게 다가가 “여자가 액체를 뿌려서 눈이 아프다”고 호소한 뒤 의무실로 가서 쓰러졌다. 눈이 아프다가 의식을 잃는 것 모두 VX 중독 증상이다.

국내 1세대 법의학자인 이정빈 단국대 석좌교수는 “김정남이 ‘누군가가 얼굴에 액체를 뿌렸다’고 말한 것을 보면 스프레이가 사용된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또 “사린가스 100배 독성을 가진 VX를 맨손에 묻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며 “용의자가 VX를 묻힌 손으로 김정남 얼굴을 문질렀다면 미리 장갑을 끼는 등 보호 조치를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섞여야 VX로 변하는 두 가지 물질을 용의자 2명이 각각 발랐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 미들베리국제학연구소 레이먼드 질린스카스 소장은 두 가지 혼합물이 범행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한편 아사히신문은 김정남 암살 지휘자가 북한 정찰총국 19과 소속 최순호 과장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천지우 최예슬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