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의 제목을 ‘방주와 노아’로 정했습니다. 지금까지 방주라는 말이 나오면 자동적으로 노아가 만든 방주를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묵상하던 중 노아가 방주를 만들긴 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방주가 노아의 삶을 이끌었고 노아의 성품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방주를 빼놓고 노아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방주를 짓는 일은 사실 노아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이디어였고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남들이 하지 않는 별난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일이 아니었고 심지어 가족이나 자기 자신에게조차 설득력이 있는 과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약 120년이라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방주를 산에서 제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때로는 신비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바다에 띄울 방주를 산꼭대기에서 만드는 일은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비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습니다.
노아가 처음엔 믿음으로 시작했을지라도 엉뚱한 장소에서 긴 세월 동안 생업과 거리가 먼 작업에 몰두하는 것은 또 다른 삶의 자질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뜻에서 노아가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방주가 노아의 성품과 인생, 신앙적 자질과 삶의 목표를 만들어갔다는 확신이 듭니다. 납득이 안 되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지만 방주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그의 성품이 다듬어졌고 하나님의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고, 방주는 하나님의 사람 노아를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연말 우리 교회도 하나님께서 같은 방식으로 일하시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교회의 추수감사주일은 ‘라면감사절’이었습니다. 과일 바구니와 꽃, 곡식과 채소 등으로 강단을 장식하던 것을 라면상자로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노숙자를 섬기는 교회에 라면상자를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40개씩 담겨진 라면상자 153개가 교회를 가득 메웠습니다. 예배 후 트럭에 실린 라면상자들을 보며 성도들은 제일 감격스러운 감사절이었다고 기뻐했습니다.
며칠 후 노숙자공동체에서 사역하는 목사님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라면상자를 운반해놓고 흐뭇해하던 중 노숙자 교인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답니다. 라면상자를 보면서 마음이 뿌듯하긴 한데 교회 근처에 있는 서울역 부근의 쪽방촌 사람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은 라면상자의 반을 가지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쪽방촌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라면을 나눠주고 돌아서면서 쪽방촌 주민에게 “힘내세요.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잖아요”라고 말했답니다. 도움을 받은 라면을 다른 이에게 나눠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을 받게 된 것입니다. 라면을 나누다가 사람됨을 회복하는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고 방주는 노아를 만듭니다. 지난해 추수감사절 때 우리 교회와 노숙인공동체는 라면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더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작은 것, 때로는 엉뚱하게 보이는 것을 통해 우리를 다듬어 가십니다. 이번 한 주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유경선 목사(서울 좋은샘교회)
[오늘의 설교] 방주와 노아
입력 2017-02-27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