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132년 만에 첫 우승부터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감독상까지…’.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신데렐라 스토리였다. 그러나 모든 동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건 아니었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레스터시티에서 최고의 한해를 보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6·이탈리아) 감독이 결국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됐다. 축구계에 새 역사를 쓰고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던 그의 마지막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레스터시티는 24일(한국시간)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라니에리 감독과 결별을 공식 발표했다. 2015년 7월 레스터시티 사령탑에 오른 라니에리 감독은 1년 7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라니에리 감독은 지난해 축구계 ‘흙수저’들의 반란을 이끌어 많은 박수를 받아왔다. 하지만 그 역시 추락한 성적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레스터시티는 2013-2014시즌 10년 만에 EPL로 승격했다. 2015년 3월 최하위(20위)에 머물다 리그 후반 5연승을 달리며 극적 잔류에 성공했다. 레스터시티는 1부리그 잔류가 가장 큰 목표로 여겨진 팀이었다.
하지만 라니에리 감독 부임 이후 레스터시티는 달라졌다. 강한 압박과 빠른 역습을 앞세운 레스터 시티는 지난해 5월 23승12무3패(승점 81)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EPL 우승을 확정했다. 1884년 창단 이후 구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전 세계 팬들은 ‘흙수저의 기적’ ‘신데렐라 스토리’에 환호했다.
EPL 우승 이후 라니에리 감독은 상이란 상을 모조리 휩쓸었다. 리그감독협회, EPL, 이탈리아축구협회 등이 선정한 올해의 감독상을 가져갔다. 지난달 10일에는 최고 권위의 FIFA가 주관하는 제1회 더 베스트 FIFA 풋볼 어워즈 시상식에서 남자 감독상을 수상했다.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올 시즌 레스터시티의 성적은 급전직하했다. 지난해 축구계 최고의 반전 역사를 쓴 레스터시티는 올해는 정반대로 EPL 최악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리그 초반부터 부진하더니 최근 5연패로 강등 위기에 몰렸다. EPL에서 전년도 우승팀이 5연패를 당한 건 1956년 첼시에 이어 61년 만이다. 24일 현재 5승6무14패(승점 21)로 17위까지 추락했다. 강등권인 18위 헐시티(5승5무15패·20점)와 승점 차는 단 1점. 전년도 우승팀이 이듬해 강등된 사례는 1938년 맨체스터시티 이후에는 없었다.
레스터시티가 이처럼 침몰한 것은 지난 시즌 주축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은골로 캉테(26·첼시)의 이적, 그리고 올 시즌 처음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와 EPL 경기를 병행하면서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탓으로 보인다. 타 팀의 견제와 분석에 팀이 제대로 대응못한 부분도 패착으로 지적된다.
그나마 승승장구하던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탈락 위기에 놓였다. 레스터시티는 지난 23일 세비야 FC와의 16강 1차전에서 1대 2로 졌다. 처음 출전한 유럽 클럽간 대항전에서 16강에 올랐으나, 선장 없는 배가 제대로 항해할 지는 미지수다.
이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제 무리뉴 감독은 자신의 SNS를 통해 “잉글랜드 챔피언, FIFA 올해의 감독이 경질됐다. 아무도 당신이 쓴 역사를 지울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무리뉴 감독도 2014-2015시즌 첼시를 EPL 우승으로 이끈 뒤 이듬해 성적부진으로 경질된 경험이 있다.
한편 영국 텔레그래프 등 현지 언론들은 레스터시티의 차기감독 후보로 거스 히딩크, 니겔 피어슨, 로베르토 만치니, 앨런 파듀 감독 등을 거론하고 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1년새 천당서 지옥으로… 레스터시티 라니에리, 우승 감독에서 9개월 만에 하차
입력 2017-02-25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