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변호사를 산다고 표현한다. 변호사를 사는 것을 법률용어로 하자면 ‘소송위임(訴訟委任)’이라고 한다. 특정인에게 소송대리권을 수여하는 소송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소액사건을 제외하고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송사가 생겨 변호사를 살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신뢰? 그러나 누굴 믿을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소송하는 경우라면 변호사도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샀다고 해도 증거가 없는 의뢰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믿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소송에서 이기려면 변호사와 당사자의 상호 신뢰관계는 필수적이다.
건축설계사 A는 공사 업자인 B의 소개로 건축주와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A는 계약대로 설계 업무를 수행했는데, 약속한 설계비를 받지 못했다고 소송을 의뢰했다. 그런데 A의 계좌거래 내역을 살펴보니 B로부터 500만원가량 입금된 사실이 확인됐다. A는 이 돈은 B가 그 전에 소개했던 4건의 설계일이 있었는데, B가 일방적으로 설계를 변경했고, 이로 인해 A의 설계 업무를 중단시켰던 일에 대한 정산금이라고 설명했다. 건축주는 B가 입금한 500만원은 자신이 A에게 지급해야 할 설계비 명목으로 입금을 부탁했던 돈이니 자신이 지급한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소송에서 이기려면 B가 A에게 정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던 증거가 필요한데, 입증할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전화통화 녹음이나 그 흔한 문자메시지조차 없었다. 이 사건을 상담하고, 증거가 없어 망연자실했던 나에게 선배 변호사는 A가 실제로 ‘설계도면을 작성해 B에게 전달했고, B가 일방적으로 설계 계약을 파기하도록 한 사실을 입증’하라고 조언했다. 이 조언은 실낱같은 희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B가 과연 우리에게 유리한 말을 하겠는가. 역시나 B는 건축주의 증인으로 나왔다. B는 자신이 정산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증인신문을 할 때 B에게 A가 작성했던 설계도면을 보여주면서 물어보자 B는 “그런 설계 업무를 A가 한 것은 맞지만 자신이 공사를 할 때 설계를 변경했기 때문에 A의 설계도면을 사용하지 않았고, 자신은 설계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설계비를 줄 의무도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A의 설계를 중간에 바꾼 경위 사실을 집요하게 질문하자 B는 “자신은 법적으로는 돈 줄 의무는 없지만 자신이 설계를 변경했기 때문에 A에게 미안해 도의적으로 소정의 돈을 지급하겠다고 얘기한 사실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증인은 ‘법적으로’와 ‘도의적으로’라는 차이를 알 정도로 법률지식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B가 자신이 채무를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판단했고, 건축주는 A에게 약속한 설계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증거가 없는 사건을 맡으면 소송을 진행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승소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누구도 믿기 어려운 세상이다. 금전거래를 할 때에는 반드시 그 금전거래 행위의 원인이 되는 사실을 증거로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 당연한 얘기인데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증거도 없이 찾아온다. 골치 아픈 소송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금전거래의 기록과 그 증거를 남기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신유진 변호사
[기고-신유진] 금전거래 때 기록 남겨야
입력 2017-02-24 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