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노트] 자존감

입력 2017-02-24 17:22
대패질하는 사람들. 귀스타브 카유보트

자존감은 무조건 높아야 정상일까? 자존감이 낮으면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우리의 자존감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열등감은 없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열등감에 시달린다. 열등감도 심했다가 좀 나아졌다가, 어느 순간 다시 심해지는 것이 보편적이다.

세상에는 열등감을 없애고, 자존감을 키워준다고 선전하는 수많은 방법들이 나와 있다. 핵심은 하나로 수렴된다. 그건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상하게 표현하면 ‘수용’이라고 한다. 자신의 못난 부분,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은 특징 때문에 괴로워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는 거다.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바꾸려고 힘 빼지 말고, 그 힘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에 전념해야 자존감이 올라간다. 이 둘을 합쳐서 ‘수용과 전념’이라고 부른다.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료에서 각광받고 있는 심리 기법도 ‘수용전념치료’다.

“받아들여라”고 했지만, 정신과 의사인 나도 내가 미울 때가 적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다른 교수가 훌륭한 논문을 발표하면 ‘아, 나는 뭐 하고 있었나’ 하며 어깨가 툭 처진다. 내가 쓴 책이 잘 팔릴 때는 ‘야, 내 글이 좀 먹히는 구나’ 하며 으쓱했다가, 요즘 잘나가는 ‘자존감 수업’의 판매량을 보면 금방 소심해지고 만다.

사실, 자존감을 올려보겠다고 자기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가능하지도 않지만 콤플렉스를 말끔히 날려버린다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자기계발서를 통째로 외워도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자”라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세상 풍파에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자존감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곤 한다.

마음만 고쳐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존감은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향해 꾸준히 움직여 나가야 비로소 커진다.

그 어떤 약점에도 불구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갈 때 ‘나’라는 사람도 완성된다. 약간의 부족함과 약간의 흠집을 가진 ‘나’라는 사람이 멈추지 않고 행동하기 때문에 이 세상도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것이다.

김병수(서울아산병원 정신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