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심은 명성을 얻고 싶은 욕구에서 생깁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귀는 그 허영심을 이용해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는 뛰어내리라 합니다.
왜 굳이 성전 꼭대기였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마귀는 예수님에게 성전 내부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당시 성전 내부는 어땠습니까. 마귀의 시험 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마가복음 11장 15∼17절을 보면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꾸짖고 내쫒으셨습니다. 당시 성전은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이 땅에 교회를 다시 세우러 오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문제가 많은 성전 내부를 봄으로써 개혁의식을 갖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성전 꼭대기를 택한 두 번째 이유는 성전과 그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3장 1절에는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구약의 예언을 믿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만약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고도 아무런 상처가 없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을 겁니다. 마귀는 이 점을 이용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질 필요 없이 손쉽게 메시아로 인정받을 길이 있다고 유혹한 겁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허영의 삶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취하라고 유혹합니다. 세상의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지나온 역사를 보면 수많은 권력자들이 스스로 영광을 취하려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형국을 보십시오. 정치권을 비롯해 곳곳에 허영이 가득 차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던 때와 같습니다. 그들에겐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허영심이 있었습니다. 사탄은 이것을 노려 그들을 유혹했지요.
허영은 죄의 뿌리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허영을 갖고 태어납니다. 관심과 찬사를 받고 싶어 하는 욕망, 그 일그러진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허영입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십시오. 허영을 채우려는 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허영으로 차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스스로 질문을 하나 해보십시오. ‘내 삶의 관중은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우리가 허영을 좇아 살면 어떻게 될까요. 진실함이 사라집니다. 초점이 사람들에게 맞춰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집니다. 평생 허영을 좇아 살면서 가면을 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뛰어내리라는 마귀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그 가혹한 사명을 결코 있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 바라보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요즘 허영심에 빠진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본분을 상실하고 스스로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착각합니다. 때문에 자신의 몸집 불리기에만 힘을 씁니다.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부디 이 땅의 크리스천들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허영은 멀리하길 소망합니다.
민경보 안산 광림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허영으로부터의 자유
입력 2017-02-25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