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바늘 꿰매고도… ‘에너자이저’ 이승훈 4관왕

입력 2017-02-24 00:02 수정 2017-02-24 00:58
한국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의 간판스타 이승훈(오른쪽)이 23일 일본 오비히로 포레스트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결선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4위에 오른 이진영과 함께 태극기를 휘날리며 빙판을 돌고 있다. 뉴시스

23일 일본 오비히로 포레스트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결선. 일본 츠치야 료스케가 두 바퀴를 돌자 앞으로 치고 나갔다. 초반에 승부를 걸겠다는 작전이었다. 이승훈(29·대한항공)은 성급하게 추격하지 않고 힘을 비축했다. 츠치야는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했다. 중·하위권에서 움츠리고 있던 이승훈은 마지막 바퀴에서 레이싱 카처럼 스퍼트를 올렸다. 곡선주로에서 아웃코스로 전력 질주한 이승훈은 앞서 가던 선수들을 추월하며 가장 먼저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두둑한 배짱과 치밀한 전략으로 ‘금빛 레이스’를 펼친 이승훈은 동계아시안게임 4관왕에 오르며 한국 스포츠 역사를 새로 썼다.

지난 20일 5000m와 22일 1만m·팀추월에서 1위를 차지한 이승훈은 매스스타트에서도 금메달을 거머쥐며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4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대회에서 5000m와 1만m, 매스스타트에서 우승한 이승훈은 총 7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동·하계 아시안게임을 합쳐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딴 선수가 됐다. 이전까지 동·하계 아시안게임에서 최다 금메달을 기록한 선수는 서정균(승마)과 양창훈(양궁), 박태환(수영)으로 모두 6개였다.

이승훈의 ‘빙상 인생’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쇼트트랙 선수였던 그는 2009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자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선수로 전향했다. 이듬해 그는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5000m 은메달, 1만m 금메달을 따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승훈은 이번 대회에서 부상을 이겨 내고 놀라운 성적을 거둬 더욱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지난 10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종목별 세계선수권 남자 팀추월 도중 링크에 넘어졌다. 자신의 스케이트날에 오른쪽 정강이를 베이는 부상을 당해 8바늘을 꿰맸다. 부상 후유증으로 제대로 훈련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이승훈은 경기 후 “매스스타트에서 후배들이 많이 도와 줘 4관왕에 큰 힘이 됐다”며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 티추월에서 내가 선두에서 이끌다가 뒤로 빠졌는데, 잘하면 1위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서두르다 넘어졌다. 동생들에게 미안해 이번 대회에서 팀추월이라도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안게임 4관왕도 자랑스럽지만 아시안게임에서 끝나지 않고 평창동계올림픽까지 이어지도록 하겠다.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만, 안되리라는 법도 없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유망주 김민석(18·평촌고)은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에 출전해 1분46초26의 아시아 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냈다. 전날 팀추월에서 이승훈, 주형준과 함께 출전해 우승한 김민석은 2관왕에 오르며 한국 빙상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반면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장거리의 강자 김보름(24·강원도청)은 일본의 작전에 말려 매스스타트에서 동메달에 그쳤다. 일본 다카기 미호와 사토 아야노는 경기 초반부터 속력을 높이는 작전으로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김보름은 전날 여자 5000m에서 금메달을 따냈지만 주 종목인 매스스타트에서 허를 찔리며 2관왕을 놓쳤다.

최다빈(17·수리고)은 마코마나이 실내링크에서 열린 피겨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TES) 35.62점에 예술점수(PCS) 25.68점을 합쳐 61.30점을 받았다. 최다빈은 우승 후보 홍고 리카(일본·60.98점)를 0.32점 차로 따돌리고 1위에 올라 25일 프리스케이팅 결과에 따라 한국의 첫 여자 싱글 금메달을 노릴 수 있게 됐다.

불모지 속에서 기적을 써가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국민일보 23일자 17면 참조)는 중국을 상대로 사상 첫 승리를 거뒀다. 한국 대표팀은 이날 쓰키사무 체육관에서 열린 중국과의 4차전에서 슛아웃(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3대 2(1-1 1-1 0-0 0-0 <슛아웃> 1-0) 역전승을 거뒀다. 태극낭자들은 경기 후 울려 퍼진 애국가를 따라 부르며 중국전 첫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상대전적 7패 끝에 거둔 소중한 승리였다. 2연패에서 벗어난 한국은 2승2패를 기록했다. 한국은 25일 홍콩과 마지막 5차전을 치른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