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3일 관영매체를 통해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해 “남조선 당국이 이미 예견했고 대본까지 미리 짜놓고 있었다”고 억지 주장을 폈다. 북한 당국이 직접 김정남 피살 사건을 거론한 것은 사건 발생 열흘 만이다. 그러나 살해된 김정남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공화국 공민”이라고만 표현했다.
북한은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외교여권 소지자인 우리 공화국 공민이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갑자기 쇼크 상태에 빠져 이송되던 도중 사망한 것은 뜻밖의 불상사”라고 주장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은 그러면서 이 사건이 남한 정부의 ‘음모책동’이라며 책임을 전가했다. 이어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박근혜 역도의 숨통을 열어주고 국제사회의 이목을 딴 데로 돌려보려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싸잡아 비판했다. 북한은 “우리를 걸고 들고 있는 것이야말로 천만부당하며 초보적인 인륜도덕도 모르는 후안무치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말레이시아 정부 조치가 국제법을 무시했다고 주장한 뒤 이번 사건 공동 수사 및 북한 법률가대표단 현지 파견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북한이 침묵 끝에 담화를 통해 억지 주장을 거듭한 것은 김정남 암살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높이고, 법률적 문제를 지적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석탄 수입을 중단한 중국도 겨냥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말끝마다 ‘친선적인 이웃’이라는 주변 나라에서는 우리의 이번 발사(북극성 2형) 의의를 깎아내리고 있다”며 “명색이 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나라가 주대(줏대)도 없이 미국의 장단에 춤을 추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의 북한산 석탄 수입 중단 이후 북한 매체가 중국을 비판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의 ‘생떼’에 격분한 말레이시아는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를 추방하는 초강경 조치를 고려 중이다. 말레이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강 대사를 ‘출국 요청을 받은 인물(Persona non grata)’로 선언해 추방하는 것을 포함한 대응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응 방안에는 북한주재 자국대사관 폐쇄, 양국 무비자 협정 파기도 포함돼 있다.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은 북한으로 돌아간 이재남 등 용의자 4명의 신병 인도와 북한대사관에 은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2등서기관 현광송,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 등 북한 국적자 3명에 대한 수사 협조도 북한 당국에 거듭 요청했다.
김현길 기자, 쿠알라룸푸르=신훈 기자
北 첫 반응 “南의 대본”… 말聯, 北대사 추방 고려
입력 2017-02-23 17:50 수정 2017-02-24 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