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테러·자연재해 겹쳐 2000만명 ‘대재앙’ 직면

입력 2017-02-23 17:36 수정 2017-02-23 21:17
5세 예멘 소년이 지난해 12월 12일 예멘 서북부 하자주의 병원 침대에 힘없는 모습으로 누워 있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가 중동과 아프리카의 심각한 기근 사태를 알리기 위해 22일(현지시간) 공개한 사진이다. 예멘에는 아이들 약 220만명이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고 이 중 46만명은 심각한 급성영양실조(SAM)를 앓고 있다. SAM을 앓는 아이들은 제 시간에 치료하지 않으면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보다 사망할 확률이 11배 높아진다. 유니세프
남수단의 젊은 엄마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수도 주바의 유엔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심각한 영양실조를 앓고 있는 2개월 된 아기를 손에 안고 있다. 남수단은 전쟁과 경제위기 등으로 지난 20일 기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기근으로 고통 받는 남수단 아이는 27만명에 이른다. 유니세프
인간이 야기한 최악의 기근으로 중동과 아프리카 4개국이 벼랑 끝에 섰다. 기근의 원인은 4개국에 재화가 한정돼서가 아니다. 내전이나 테러, 주변국과의 전쟁으로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겨서다. 여기에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까지 더해지면서 위기 상황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국제사회는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은 인간만이 풀 수 있다고 보고 연대와 행동을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2일(현지시간) “중동과 아프리카 4개국 예멘, 남수단, 소말리아, 나이지리아 주민 약 2000만명이 심각한 기근에 놓여 있다”며 “기근이 대재앙으로 확산되지 않게 하려면 다음 달 말까지 최소 44억 달러(약 5조60억원)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유엔이 현재 모금한 긴급 구호자금은 9000만 달러(약 1023억원)로 목표액에 한참 못 미친다.

단호한 행동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구테흐스는 “국제사회가 힘을 모으면 막을 수 있는 재앙”이라면서 “수백만명의 목숨이 우리의 실행력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풍요로운 시대에 무관심하거나 무대응하는 것에는 어떠한 변명도 있을 수 없다”고 동참을 당부했다. 또 “4개국에는 이미 현실로 닥친 비극”이라면서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특히 남수단 상황은 보다 심각하다. 남수단 정부는 지난 20일 기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13년 발생한 내전이 초래한 결과다. 유엔은 오는 7월까지 남수단의 기근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인구의 40%인 약 500만명이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근이 선포된 국가가 나온 것은 2011년 소말리아 이후 처음이다. 소말리아에선 2010∼2012년 26만명이 굶어죽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남수단 상황에 큰 우려를 표명했다. 교황은 이날 바티칸에서 “남수단인 수백만명이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며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말뿐이 아닌 실질적인 식량 원조가 절실하다”고 요청했다.

가장 큰 피해 대상은 아이들이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는 지난 21일 성명을 통해 올해 기근으로 아이 140만명이 죽음의 위기에 놓였다고 발표했다. 나라별로는 나이지리아 45만명, 예멘 46만2000명, 남수단 27만명, 소말리아 18만5000명의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전했다. 앤서니 레이크 유니세프 총재는 “과거의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글=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