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세금·규제 피하기 외국담배社 ‘꼼수’

입력 2017-02-23 17:48 수정 2017-02-23 21:28
조만간 국내 출시 예정인 영국 BAT의 궐련형 전자담배 ‘글로’(위)와 미국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

외국 담배회사들이 ‘궐련형 전자담배’를 우리나라에 들여온다. 사실상 잎담배지만 법적으로는 전자담배로 분류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세금과 금연정책을 피하려는 꼼수다.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23일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미국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고체형 가열 방식의 신종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iQOS)’를 이르면 다음달쯤 국내에 출시할 전망이다. 영국계 BAT도 조만간 비슷한 형태의 ‘글로(GLO)’를 국내에 판매할 예정이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기존 전자담배와 달리 충전식 전자장치에 기존의 궐련 담배와 똑같이 생긴 스틱을 꽂아 쓰는 형태다. 스틱은 한 개비가 필터와 판상엽(각초를 종이로 만 형태)으로 이뤄진 데다 팩당 20개비로 포장돼 모양이나 구성, 포장 방법이 시판되는 일반 담배와 거의 같다.

흡연 방식도 전자장치에 꽂은 스틱을 가열해 발생하는 증기를 필터로 빨아 흡입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니코틴 용액이나 연초 고형물을 사용하는 기존 전자담배와 비교해 궐련의 맛이 훨씬 강하다. 필립모리스와 BAT의 제품은 이미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문제는 현행 세법상 적합한 기준이 없어 ‘연초 고형물을 이용한 전자담배’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전자담배에는 g당 담배소비세 88원, 지방교육세 38.7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스틱 한 개의 각초 무게가 6g정도인 아이코스의 경우 담배소비세 528원, 지방교육세 232원이 붙어 시중에 판매되는 담배(각 1007원, 443원)와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게다가 궐련과 달리 개별소비세와 건강증진기금, 폐기물부담금 등 다른 제세 부과 조항은 아예 없다. 사실상 잎담배이면서도 전자담배로 분류돼 세금을 피해가는 셈이다.

국회에서 신종 전자담배에도 궐련처럼 갑(20개비)당 1007원의 담배소비세를 부과하는 지방세법과 개별소비세 및 건강증진기금(20개비당 841원)을 신설하는 법안이 이달 초 발의됐지만 상임위 논의가 더디다.

더 큰 문제는 흡연율을 낮추려는 정부의 금연정책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점이다. 전자담배는 담뱃값 인상은 물론 새로 도입된 10종의 흡연 경고그림 부착 의무도 피해간다. 전자담배는 ‘주사기 모형, 중독위험’ 1종만 표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이성규 부연구위원은 “전자담배는 안 그래도 금연보조제로 잘못 인식되면서 부모가 사주기도 한다”며 “궐련과 비슷한 신종이 들어오면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싼 가격 때문에 신규 흡연자를 양산하는 ‘게이트 웨이(입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우준향 사무총장도 “업체는 궐련처럼 태우는 게 아니어서 냄새가 없고 유해물질도 적다고 홍보하지만 흡입하는 증기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 “사전에 분류 및 과세 기준을 명확히 하고 성분 분석 등도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아울러 “흡연 규제를 교묘히 피해가거나 과세 구조상 유리한 ‘중간형(하이브리드) 신종 담배’가 계속 출현할 가능성이 크다”며 “담배의 정의를 새롭게 내릴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조만간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와 관련 부서 협의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