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을 옮기도록 요구하는 공문을 부산시 등 관련 지방자치단체에 발송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소녀상 이전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가라앉지 않는데도 정부가 일본 눈치만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외교부는 지난 14일 부산시와 부산 동구청, 부산시의회에 공문을 보내 “소녀상 위치가 외교공관 보호와 관련된 국제 관행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오래 기억하기에 보다 적절한 장소로 옮기는 방안을 놓고 정부·지자체·시민단체 등 관련 당사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가 공문을 보낸 시점은 독일 뮌헨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갖기 직전이다. 장관 회담에 앞서 부담스러운 난제를 먼저 해결하기 위한 시도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공문 내용은 소녀상에 대한 외교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수준이다. 외교부는 지난달 13일 국회에서 윤병세 장관이 “공관 앞 조형물 설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뒤 이런 입장을 유지해 왔다.
부산 소녀상 관할 지자체인 부산시와 동구청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동구청은 지난해 말 소녀상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충돌하는 등 한 차례 곤욕을 치렀다. 이미 지자체 차원에서는 손쓸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 된 지 오래다. 동구청 관계자는 23일 “구청장이 ‘임기 내 소녀상 철거나 이전은 없다’고 한 입장에 변화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도 무덤덤하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외교부의 공문 발송과 관련해 “위안부 합의를 착실히 이행토록 한국 측에 요청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부산 소녀상에 항의한다며 자리를 비운 지 두 달째인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 귀임에 대해서도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하겠다”며 확답을 피했다.
외교부는 소녀상 문제가 불거진 이후 줄곧 우리 국민 여론과 일본 정부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위안부 합의 이후 대일(對日) 유화 기조에 따라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호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은 여기에 전혀 호응하지 않고 있지만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인 탓에 탄력적 대응도 어렵다. 한 외교 전문가는 “현 정부는 ‘대일 외교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피하고 싶은 것 같다”면서도 “대일 외교는 이미 실패했다”고 혹평했다.
일본은 한·일 관계를 개선할 유인이 많지 않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해 대(對)러시아 외교 실패로 궁지에 몰렸다가 부산 소녀상을 빌미로 한국을 때려 점수를 상당부분 만회했다. 한국 정부 리더십이 조만간 교체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외교적 부담도 크지 않다. 오는 4월에는 ‘동해’ ‘일본해’ 병기 여부를 논의할 국제수로기구(IHO) 총회가 예정돼 있어 한·일 관계는 한동안 냉각기를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日 눈치’ 보는 외교부… 부산 소녀상 이전 요구 공문
입력 2017-02-2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