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 인상 호흡’이 가빠지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관망 모드’를 유지한 것이다.
또 이주열(사진) 한은 총재는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의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에만 141조원 늘어 1344조원에 이른 가계부채의 규모는 분명 문제이지만 그 자체가 경제 위협요인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는 진단이다. 이 총재는 일각에서 제기한 ‘4월 위기설’도 과장됐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23일 금통위원 전원일치로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1.2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6월 0.25% 포인트 낮춘 이래 8개월째 동결 행진이다.
이 총재는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금통위회의를 주재한 뒤 간담회를 열고 “가계부채가 양적으로 크게 늘었지만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은 전체적으로 양호하다”고 밝혔다. 근거로 가계부채 구조의 질적 개선, 우량 차주 증가, 금융자산이 금융부채를 웃도는 점 등을 꼽았다. 그는 “고정금리 분할상환 비중이 높아졌고, 1∼3등급 고신용 및 상위 30% 고소득층이 가계부채의 65%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월 들어 은행권 가계대출이 1000억원대로 급감한 점도 이런 발언을 뒷받침한다.
이어 이 총재는 “무디스, 피치 등 신용평가 기관도 국내 금융기관의 높은 건전성, 가계부채 차주 분포, 질적 구조개선 노력을 고려할 때 가계부채가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을 제한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저소득·저신용·다중채무자 등 취약계층의 채무 부담이 금리 상승으로 급증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발언은 ‘가계부채 부작용’이 현실보다 과도하게 강조됨으로써 통화정책 운용의 폭이 제한되는 것을 해소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국내 가계부채 급증은 미국발(發) 금리 인상 예고 및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한 경제정책과 함께 한은의 금리 조절을 방해하는 3대 요소로 꼽혀 왔다.
여기에다 이 총재는 ‘4월 위기설’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 등을 모두 일축했다. 미국이 4월에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에 대해 “미국의 교역촉진법 기준으로 보면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알려진 리스크”라며 “정부와 관계기관이 대비 중”이라고 전했다. 소비자물가도 지난달에 농축수산품을 중심으로 오르긴 했지만 수급이 개선되며 장기적으로 물가안정 목표인 2%를 유지할 것으로 봤다.
원론이긴 하지만 가계부채에 대한 이 총재의 다소 완화된 인식이 드러남에 따라 올해 안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릴 계기를 갖게 될지 주목된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정책금리 인상이 최대한 늦춰지는 것이다. 이날 공개된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의사록’에는 ‘꽤 가까운(fairly soon)’ 시일에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하지만 시장에선 3월보다 5∼6월에 무게를 싣고 있다. 3월에 금리를 인상할 확률은 34.0%인 반면 5월은 61.8%, 6월은 76.1%다.
글=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이주열 “가계빚 리스크 전염 없을 것” 4월 위기설도 일축
입력 2017-02-24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