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남중] 도서관 하나 짓지 못해서야

입력 2017-02-23 18:08

지난 두 달간 틈나는 대로 서울시내 구청장들을 찾아다니며 신년 인터뷰를 했다. 구청장 25명 중 15명을 만났다. 같은 서울시 안에서 구의 사정이란 게 어디든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착각이었다.

주민 대다수가 아파트에 사는 구가 있는가 하면 광진구처럼 아파트가 거의 없는 구가 있다. ‘부자구’가 있고 구 예산의 80%가량을 복지비로 사용하는 가난한 구가 있다. 백화점 외에는 별다른 상업시설이 없는 구가 있는 반면 중구나 강남구처럼 상업지구가 가득한 구가 있다. 인구 격차도 꽤 크다. 송파구는 67만명이고, 중구는 13만명이다. 젊은 부부들이 몰려드는 구, 1인가구가 밀집한 구, 고령층 인구 비중이 높은 구가 있다.

25개 구마다 조건과 특성이 각기 달랐고 구청장이 집중하는 주제나 분야에도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구청장이든 빼놓지 않고 하는 얘기가 있었다. 돈 문제였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구청장이 되면서 번듯한 도서관 하나 짓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예산으로는 할 수가 없다”면서 “도서관 하나 지으려면 300억원 이상 필요한데 구청장이 임기 중 쓸 수 있는 예산을 다 합쳐도 그만큼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도 “우리 구 예산이 4500억원쯤 되는데 가용 재원은 100억원밖에 안 된다. 그거 가지고는 동주민센터도 하나 못 짓는다”며 비슷한 얘기를 했다.

한 구청의 1년 예산이 4000억∼5000억원 된다고 하지만 그중 절반가량은 사회복지비로 지출되고, 나머지도 공무원 월급 등 대부분 용처가 확정된 예산이다. 구청장들이 자신의 뜻을 담아 집행할 수 있는 돈은 한 해 100억원도 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지난번 선거에서 아예 유세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구청에 자기 예산이 거의 없다. 구정의 70% 이상이 서울시 행정을 대행하는 것인데 구청장으로 나서면서 무슨 공약을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해식 강동구청장 역시 “구 예산 대부분이 꼬리표가 붙은 돈”이라며 “구청에 예산편성권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시작된 후 20년도 더 지났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주민들이 투표해서 단체장 뽑기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선출된 단체장이 독자적인 지역정치를 해나갈 길이 여전히 막혀 있기 때문이다. 재정, 입법, 조직 등 지방자치를 위한 3대 권한을 중앙정부에서 모두 통제하고 있다.

구청장들이 하나같이 이번 대선과 개헌 과정을 주시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지방분권을 실현할 수 있는 결정적 시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방분권의 핵심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행 8대 2에서 7대 3, 또는 6대 4로 바꾸는 재정분권이라고 보고 있다.

구청장들은 탄핵정국이 초래한 국정공백 상태 속에서도 시민들의 삶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지방정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또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그리고 출마를 포기한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현직 지자체장들이 대선후보군을 다수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지방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수긍할 수 있는 얘기들이다. 지난 20년 한국 정치를 돌아볼 때 중앙정치의 지지부진에 비하면 지방정치의 성장은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지방의 시대를 더 넓게 열어야 한다. 구청장이 임기 중에 도서관 하나 짓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정말 곤란하지 않겠는가.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