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지형은] 우리 가운데 있는 거인들

입력 2017-02-23 17:18

몇 년 위인 어느 선배의 체험이다. 그 선배가 삼십을 갓 넘었을 때였다. 1986년 가을이라고 들었으니까 30년 전이다. 선배가 직접 쓰는 것처럼 일인칭으로 서술하겠다.

원하던 직장에 들어갔다. 직장 상사의 집을 찾아갔다. 작은 인사라도 하는 게 예의라고 다른 사람이 조언했고 또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마침 추석 명절 얼마 전이었다. 사과 한 박스를 사들고 갔다. 현관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그분이 나오더니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대뜸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 임마, 너 지금 나한테 시위하는 거니?”

갑자기 날아온 퉁명스러운 언사에 크게 당황했다. 뭐라고 대답할지 몰랐다. 직장의 최고 책임자이고 게다가 한 세대 정도 위인 분이라서 그렇지 않아도 잔뜩 어려운데 이런 말을 들으니 어쩔 줄을 몰랐다. 그분이 던진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라 어떻게 대답할지 모르고 서 있는데 또 말한다.

“내 월급이 더 많아, 네 월급이 더 많아?”

“아, 예, 물론….”

더듬거리며 겨우 대답을 하려는데 조금도 봐주지 않고 이어진다.

“너 지금, 명절인데도 내가 너한테 사과 박스 보내지 않는다고 시위하는 거야?”

그날 사과박스를 현관에 놓았는지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서 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한 열흘 동안은 직장에서 그분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분만 보면 피해서 다녔다. 얼마 후에 나를 불렀다. 놀랐느냐고 물으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다.

그분은 좀 멀리 지방에 출장을 가면 꼭 당일에 서울로 돌아왔다. 숙박을 하게 되면 지방의 작은 교회가 방을 잡아주는 데 돈 들고, 자고 나면 아침식사도 대접해야 하니 부담이 될 거라면서 늦어도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늦게 도착해서 집까지 갈 시간이 안 되면 사무실로 와서 소파에 누워 주무셨다. 젊은 날에, 나는 일하는 것을 그렇게 배웠다.

외국에 다닐 때 그래도 한국의 큰 교단 총무인데 좀 편하게 비행기를 타고 다녀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터였지만 그분은 늘 일반석이었고 그마저도 항상 가장 싼 표를 끊으라 하셨다. 당시 총회본부에서 총무의 해외 일정이 있을 때면 직원들의 일이 비행기 일정을 이리저리 알아보면서 가장 싼 표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밤중에 공항에 나가거나 도착지 시간이 밤이 되기 일쑤였다. 호텔에 묵을 만도 한 상황에서도 공항에서 코트든 뭐든 덮고 주무셨다. 수행하는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선배의 젊은 날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사회가 걸어온 길을 머리에 그렸다. 함께 일했던 후배들에게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신 그분이 남긴 발자국이 분명하고 깊으리라. 선배의 삶이 올곧으면서도 정이 깊은 것을 좋아하고 존경했는데, 선배가 살아온 삶의 여정에 그런 거인이 계셨구나 생각했다.

어느 교단의 총무를 지내신 그분뿐이랴.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그래도 이렇게 유지되고 발전해 온 것은 어떻게든 자기 이름을 내려고 안달하는 그런 사람들과 다른, 이름 모를 거인들이 계셨기 때문일 테다. 그런 거인들의 인격이 다른 사람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있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미래를 희망할 수 있다. 12세기의 신학자 사르트르 베르나르의 말이다.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들과 같아서 더 멀리 볼 수 있다.”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