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삼열 선교 열정 생생… 자료집 첫 공개

입력 2017-02-23 00:02 수정 2017-02-23 17:25
1890년말 당시 평양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 왼쪽부터 리, 마펫, 베어드, 헌트, 웰즈, 휘트모어 선교사. 오른쪽 사진은 마펫 선교사(앞줄 오른쪽)의 가족 모습. 숭실대 제공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의 초석을 제공했던 새뮤얼 A 마펫 선교사의 활동이 생생히 기록된 선교보고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19세기말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따라 자행됐던 외국 선교사와 기독교도에 대한 탄압 실상, 박해 속에서도 성령의 은혜를 전했던 한국교회 초기 역사가 상세하게 기록된 자료다.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소장 김선욱 교수)는 평양장로회신학교(장로회신학대와 총신대 전신) 설립자이자 대한예수교장로회 8대 총회장을 지낸 마펫(한국명 마포삼열·1864∼1939) 선교사의 편지와 선교 보고서 등을 모은 ‘마포삼열 자료집 1,2권’(책임편집 옥성득 미국 UCLA 석좌교수·새물결플러스)을 발간했다고 22일 밝혔다. 책은 오는 8월까지 3, 4권을 발간되고 총 10권의 자료집이 나올 예정이다.

“국경 부근의 중국지방 의화단원(義和團員)들은 천주교도나 개신교도를 잡아오는 한인에게 15냥(10원)을 지급하겠다고 현상금을 걸고 있습니다.…용천에서 폭도들이 교회당을 공격하여 일부 파괴했으며, 10명의 기독교인을 잡아 심하게 구타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지방관에게 자신들이 기독교인을 섬멸해도 되는지를 청원했습니다. 이에 지방관은 ‘어찌 서학(西學)하는 오랑캐를 박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답했습니다.”(1900년 9월 마펫 선교사가 알렌 공사에 보낸 편지).

“성찬식 예배 때 59명의 남녀가 세례 받았는데 그중 1명은 77세 노인으로 역사에 남을 만한 인물입니다. 30년 전 평양에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불탔을 때 배에 올라 포로로 잡혀 있던 도시의 관리를 구해 강변으로 헤엄쳐 나왔던 사람입니다. 범선을 불태우는데 참여했고, 평양에 처음 신약전서를 전한 토마스 목사와 선원들이 처형되는 걸 목격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1899년 마펫 선교사가 미국 장로교본부에 보낸 보고서)

마펫 선교사는 1890년 26세 때 조선에 와서 46년간 선교사로 활동했다. 1911년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한 ‘105인 사건’을 미국 장로회본부에 보고해 국제여론을 일으켰다. 평양 등지에 1000여개의 교회와 300여개의 학교를 세웠다.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해 길선주 한석진 김익두 주기철 등 800여명의 목회자를 배출했다.

항일운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일제가 성경과 종교 과목을 폐지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그는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1938년 숭의여학교를 폐교해야만 했다.

자료집에는 한국교회에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 즐비하다. 1권은 1868년부터 평양 최초의 널다리골 교회를 세운 1894년까지, 2권은 1895년부터 조선선교 초기 1900년까지의 편지와 보고서, 언론기사 등을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마펫 선교사의 며느리 마애린 여사는 미국에서 집 정리를 하다 고인의 생전 자료들을 발견했고, 20여년간 직접 마이크로필름을 판독하고 타이핑해 정리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