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일본 ‘문단 아이돌’ 어떻게 만들어졌나

입력 2017-02-24 05:00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 그의 인기는 신드롬에 가까웠다. ‘노르웨이의 숲’ ‘댄스 댄스 댄스’ 모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잘 팔리기만 한 게 아니라 본격적인 작가론부터 팬클럽 수준의 잡지 기사까지 가세했다. 독자만이 아니라 평단, 저널리즘도 하루키 신드롬을 떠받드는 기둥이었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사이토 미나코(61)의 ‘문단 아이돌론’은 이런 작품들이 왜 잘 팔렸는가보다 왜 잘 논해졌는가에 주목한다. 기존 평론집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독자 평론가 언론이 함께 만든 일종의 ‘집단 기획’하에 하루키 같은 ‘문단 아이돌’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20세기 후반 일본문학 전성기의 스타 작가 8인을 그 시대와 연결해 서술한 문예평론집이다.

1부에서는 거품경제 시기에 경이로운 베스트셀러를 냈던 3명의 작가(하루키, 다와라 마치, 요시모토 바나나), 제2부는 ‘여성 시대’를 상징하는 2명의 여성 논객(하야시 마리코, 우에노 지즈코), 3부에서는 작가라는 틀을 넘어 폭넓은 분야에서 언론활동을 펼친 3명의 지식인(다치바나 다카시, 무라카미 류, 다나카 야스오)를 살펴본다.

문단 아이돌의 세계에선 작품성보다 작가를 둘러싼 주변 정보, 혹은 책의 부가가치 등이 판매에 더 결정적이다. 이를테면 ‘키친’의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름부터 상품성이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왜 ‘바나나’라는 이상한 필명을 붙였을까. 가타가나로 적힌 ‘바나나’를 보면 그 순간 노란색, 맛, 삿 짱(바나나를 절반 밖에 못 먹는 여자아이가 나오는 동요) 등이 연상되지만 히라가나로 적힌 ‘바나나’를 보면 작가가 젊은지 나이가 들었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일본풍인지 서양풍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저자는 바나나를 일종의 팬시상품으로 보는 이런 글을 소개하면서 본격 평론보다는 저널리즘적 비평이 작가의 인기 배경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더 잘 포착할 수 있다고 본다.

작업 방식의 변화도 문단 아이돌 탄생에 기여한다. 스타 저널리스트인 다치나마 다카시는 한때 현장을 발로 뛰는 가난한 르포 기자였다. 명성을 얻은 뒤에는 취재 기자를 고용해 자료를 수집하고 자신은 집필에만 집중함으로써 ‘지식의 거인’이 될 수 있었다. 이 같은 비평 작업은 지식의 편의점화를 요구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문단 아이돌을 탄생시킨 1980∼90년대 일본사회가 자연스레 조망된다. 넘치는 재기와 사이다 같은 문체가 독자를 흥분시키지만, 비평의 깊이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