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측 대리인들은 22일 헌법재판소를 향해 폭언을 쏟아냈다.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국회 측의 수석대리인” “독선적이고 강압적으로 재판을 진행한다”며 기피신청까지 제기했다. 8인 재판관 체제에 대해서는 “헌법상 하자(瑕疵)가 있게 된다”고 폄하했다.
헌재는 구두로 유감을 표명했을 뿐 감치(監置) 등의 강제적 소송지휘권을 발동하지는 않았다. 온갖 모욕적 언사도 충분히 들은 뒤 조목조목 반박했다. 헌재는 소송 진행 과정에서 오히려 박 대통령 측의 요구사항을 더 많이 들어준 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평우 변호사는 오후에 속개된 변론 도중 발언권을 얻어 1시간40분쯤 헌재와 국회를 강렬하게 규탄했다. 탄핵소추 자체가 위헌적이며,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재판을 진행한 헌재는 불공정했다는 취지였다. 김 변호사는 주심으로서 심리를 진행하는 강 재판관을 향해 “국회 측의 수석대리인이다” “법관도 아니다”며 막말을 했다. 강 재판관이 유독 박 대통령 측 신청 증인들을 매섭게 추궁하고, 국회 측을 ‘코치’했다는 주장이었다.
강 재판관은 “양측의 증인신문이 부족하거나 나온 증거가 모순되면 재판부가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 대통령 측도 탄핵소추 적법성 시비를 철회하는 과정에 강 재판관의 강요가 없었다고 인정했다. 강 재판관은 “정확하지 않은 사실관계에 근거해 법정에서 주심의 이름을 특정, 청구인 수석대리인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법정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 20일 재판관석을 향해 삿대질했던 김 변호사는 이 대목에서 다시 고성을 지르며 막무가내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강 재판관이 독단적으로 규칙을 제정한다며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모욕적 언사를 참고 진행하고 있다. 지난 기일에도 재판부에 삿대질과 ‘헌법재판관을 뭐하러 하느냐’고 발언했다”고 지적하자 “내가 뭐라고 했느냐. 녹음한 걸 틀어보라”고 맞섰다.
이 대행은 유감을 표한 뒤 박 대통령 측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대행은 문서송부촉탁신청, 사실조회신청, 증인신청 채택 과정에서 박 대통령 측 요구를 더욱 많이 받아들였다고 일일이 숫자를 거론하며 설명했다. 그는 “준비절차기일 3차례, 변론기일 15차례의 과정을 안 본 이가 나와서 이 재판이 불공정하다 하면 누가 납득하겠느냐”고 말했다. “중대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인데 약간 민망한 부분으로 가기도 했다”며 대리인단의 자질을 완곡히 꾸짖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박한철 전 헌재소장, 정세균 국회의장 등 20여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 신청이 기각되자 박 대통령 측은 주심 강 재판관을 기피신청했다. 조원룡 변호사는 “강 재판관이 불공정하고 편파적, 독선적이고 고압적으로 재판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15분 만에 “오직 심판의 지연을 목적으로 한 것이 분명하므로 부적법하여 각하한다”고 결정했다.
김 변호사는 “재판부가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대리인이냐”고 했고, 조 변호사는 “이정미 권성동이 한편을 먹었다. 심판을 봐야 할 사람이 선수가 됐다”며 국회와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이 대행은 “말씀이 지나치다. 함부로 말씀하신다고 설득력 있는 게 아니다”고 다시 지적했다. “하루만 국회의원을 해도 연금을 받는다” “국민은 소추장(탄핵소추의결서)을 보지 못했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은 상당 부분 허위로 드러났다.
이날 자신들끼리 의견이 충돌하는 모습을 연출한 박 대통령 측은 “합의되지 않고, 각자 소송을 수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 측은 변론 뒤 기자들을 만나 “시간이 나면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라는 책을 읽으라”고 권했다. 이중환 변호사는 “미 연방대법원의 황당한 판결을 모아둔 책”이라며 “오래도록 기록이 남아서 그 당시의 재판관이 누구인지 지금도 회자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법관도 아니다” “국회측 수석대리인”… 막가는 朴측 대리인
입력 2017-02-2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