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행복이 국정의 최우선인 나라 ‘부탄’

입력 2017-02-23 18:17
‘부탄 전문가’로 통하는 박진도 교수(가운데)가 2013년 5월 부탄의 수도 팀푸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진도 교수 제공
‘첫눈이 오면 학교나 일터로 가지 않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낭만을 즐긴다. 모든 공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아이를 낳으면 6개월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고, 아이가 만 두 살이 될 때까지 근로시간을 하루 2시간 줄여준다. 전 국토의 70%를 숲으로 보전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이나 북유럽의 부자나라를 묘사한 게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GDP)이 3000달러도 안 되는 작은 나라, 부탄의 모습이다. 이것은 박진도(65) 충남대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부탄 행복의 비밀’ 서문으로 도입부 몇 문장만 읽어도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책은 낙원 같은 부탄의 모습을 전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부탄 정부의 정책들을 살피고 후진적인 경제 시스템 등 이 나라의 문제점도 가감 없이 전한다. 최근 서울 서초구 한 사무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부탄 국민이 모두 행복한 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부탄 정부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전략을 갖췄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부탄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국가예요. 기득권층 이익에 휘둘리는 우리나라와 다릅니다. 사회적 유대도 끈끈하죠. 한국은 언젠가부터 ‘외톨이 사회’가 돼버렸지만 부탄 사람들은 공동체 의식을 갖추고 있고, 이것이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가 책을 통해 소개하는 부탄의 ‘행복 정책’ 중 핵심은 이 나라가 실시하고 있는 ‘국민총행복조사’다. 조사는 크게 4개의 질문을 뼈대로 삼는다. ①사회와 경제가 공정하게 발전하고 있는가 ②문화를 보존하고 증진하는가 ③생태계 보존에 이바지하는가 ④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는가. 이들 4개 질문은 9개 영역으로 나뉘고, 9개 영역은 또다시 33개 지표로 세분화돼 조사가 진행된다. 부탄 정부는 이를 통해 5년 주기로 국민의 행복 지수를 측정하고 있다.

“부탄 법에는 이런 조항이 있어요. ‘백성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경제 성장만 좇는 우리나라는 ‘성장 중독’에 빠져 있는데, 이제 여기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성장이 안 되더라도 우리가 갖춘 물적 토대를 잘 나눠쓴다면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예요.”

서울대와 일본 도쿄대를 나온 박 교수는 충남대에서 35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경제학자다. 그가 부탄에 관심을 가진 건 충남발전연구원 원장에 부임한 2010년부터였다. 연구원은 충남도의 싱크탱크였고, 당시 충남도의 슬로건은 ‘행복한 변화 새로운 충남’이었다.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고 계량화되지 않는 분야라고 여겼어요. 이걸 연구하는 건 심리학자나 사회학자의 몫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충남도민의 행복을 연구해야하는 직책을 맡으니 고민이 되더군요. 그러다가 부탄이라는 나라를 알게 됐고, 부탄을 통해 ‘행복 연구’를 시작한 거죠.”

연구원 원장에 부임한 이듬해를 시작으로 2013년과 2015년, 총 3차례 부탄을 방문했다. 오는 6월에도 또다시 부탄으로 떠날 예정이다. 그는 “앞으로 2년에 한 번씩은 부탄에 갈 것”이라고 했다.

“부탄이 변화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요. 산업화가 진행되더라도 그 폐해가 우리나라보다는 덜할 겁니다.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시하는 부탄 정부가 중심을 잘 잡고 있으니까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