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장희]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입력 2017-02-22 17:34

19세기 초 영국에선 러다이트(Luddite)로 불리는 기계파괴운동이 벌어졌다. 일자리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인간들의 항거는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진 1차 산업혁명이 계기였다. 이 무렵 존 스튜어트 밀 등 사상가들이 빈곤에 대한 해법의 하나로 제시한 개념이 기본소득이다. 200년이 지난 후 기본소득 논의가 재개됐다. ‘일하든 안 하든 모든 국민에게 매달 일정액의 생계비를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제는 과거 경제민주화처럼 한국 대선의 주요 이슈로도 부상할 조짐이다.

이번에도 계기는 산업혁명이다. 로봇, 인공지능이 육체적 노동뿐 아니라 법률적 판단, 의학적 진단 등 정신적 노동까지 대체해 20세기 일자리의 99%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고가 기본소득 논의를 부추기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도 호의적이다. 이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사라져 소비기반이 무너지면 산업기반 역시 흔들린다고 판단한 듯하다. 인공지능을 파괴하기 위해 해킹을 시도하는 ‘디지털 러다이트’가 등장할 수도 있는 만큼 기본소득을 안전판으로 생각한 것이다.

일자리 파괴적 기술혁명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시작됐다. 지난 연말 금융권에는 스마트 결제 확산에 따른 인력감축 태풍이 한 차례 몰아쳤다. ‘알파고’의 위력을 실감한지라 일자리 감소 속도가 빨라지면 어느 나라보다 위기감은 커질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 도입은 아직 시기상조로 보인다. 일하지 않아도 나라가 누구에게나 돈을 준다는 복지 개념 자체에도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실업대란 우려 역시 과민반응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 기술혁명 때마다 이런 두려움은 늘 있었지만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다. 1960년대 미국에선 제어장치 자동화에 따라 일자리가 없어져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그저 논의로 끝났을 뿐이다.

제일 큰 걸림돌은 재원이다. 전국 2000만 가구에 월 50만원씩 줄 경우 연간 120조원이 든다. 지난해 정부 총지출이 386조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돈이다. 불필요한 예산집행을 최소화하고 기존 복지비의 구조조정 등을 통해 조달할 수 있다는 정치인들의 논리도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 논의를 ‘포퓰리즘’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저소득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구조가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소득 상위 20%가 하위 20%에 비해 소득은 평균 4배, 자산은 109배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 20년간 소득분배가 지속적으로 악화된 결과다. 성장하는 만큼 부가 공유되는 노동시장의 순기능 역시 급속도로 약화된 상황이다. 때문에 비록 한 달에 몇 만원에 그칠지라도 그만큼 불평등이 해소되고 부의 재분배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빈곤층이 두터워지는데도 갈수록 복잡해지는 복지시스템 역시 기본소득 도입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기본소득제가 도입되면 누가 혜택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데 발생하는 행정비용 등을 줄이고 소비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의 비중이 선진 복지국가들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OECD에 비해 평균 자살률은 3배, 노인빈곤율은 4배나 된다.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다. 복지 후진국이 경제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없다. 어찌됐든 이번 대선에선 양극화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기술 진보에 따른 일자리 문제, 사회안전망 등을 놓고 치열한 정책 경쟁이 이뤄지길 바란다.












한장희 경제부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