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지요?” 2009년 초 선교 헌금에 동참하던 몇 분이 연락을 해왔다. 불경기가 심해 더 이상 헌금을 할 수 없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하지 않았다. 본래 우리의 공급자는 하나님 한 분이심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해 결산을 해보니 모두 8억850만원이었다. 3억7700만원이었던 전년도에 비해 두 배가 넘었다. 침체된 경기 탓에 헌금하는 회원들은 줄었지만 헌금액은 훨씬 증가한 것이다. 2008년에는 카자흐스탄과 중국, 캄보디아, 러시아 등까지 우리가 지원하는 신학생이 4명이나 더 늘었던 참이었다.
선교회가 신학생을 후원한 것은 러시아에서 온 올가 자매 때부터였다. 지금은 전도사가 된 올가는 2001년 초 우리 선교회에 처음 왔고 스테반 전도사는 2002년이었다. 이 두 사람은 선교회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연을 맺었다. 이들은 우리가 초청한 학생은 아니었다. 처음엔 교통비를 조금씩 지원했다. 그러다 올가 전도사를 전적으로 지원하게 됐고 스테반 전도사는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기에 생활비만 댔다.
선교회가 본격적으로 장학 사역을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였다. 첫 번째 학생은 앞서 언급했던 중국동포 김영훈 전도사다. 장학 사역을 시작하기 전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가서 선교사들의 희생을 되새긴 일이 있다. 그때 나는 ‘장학금을 지원해 10명 이상의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고 싶다’고 서원했다. 이후 김 전도사를 시작으로 하나님은 몽골 캄보디아 학생들을 줄줄이 보내주셨다. 불과 2년 만에 서원했던 숫자 10명을 넘어 12명이나 지원하게 됐다. 지금은 30명이 넘었다.
선교회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학비 전액과 기숙사비, 그리고 매월 생활비 50만원씩을 지급한다. 1년에 한 번씩 고국에 갈 수 있는 왕복 항공료도 지원한다. 졸업하면 노트북 컴퓨터를 선물로 주고 졸업 후에도 계속 지원한다. 2009년부터는 이들 학생이 선교사가 돼 고국에 교회를 세우는 일을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러시아와 몽골에 각 5000만원씩을 후원해 교회를 세웠다. 나는 계산에 익숙하지 않고 관심도 없어서 선교회에서 지출한 장학금이 지금껏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넉넉히 채워주셨다는 사실뿐이다.
학생 수가 크게 늘어나는 것을 보고 큰 교회에 다니는 어느 의사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학생들을 다른 교회에 연결시켜 주면 권사님이 그처럼 힘들어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 수없이 몰려드는 외국인 환자들을 계속 받을 때에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권사님, 이렇게 오는 환자를 다 받다가는 권사님이 먼저 망가지겠어요.”
그때마다 나는 그냥 웃고 만다. 여전히 풍성하게 채우시는 주님의 손길을 눈으로 확인하며 이 사역을 기쁘게 감당할 뿐이다. 우리 선교회는 모금을 하러 다니지 않는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넉넉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 원칙을 고수해 아무리 다급한 상황에서도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정말 다급해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면 여호수아 3장을 묵상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강한 믿음을 갖고 한 걸음씩 내딛었고 그 믿음으로 물이 온전히 끊어진 요단의 마른 땅을 건널 수 있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상숙 <11> 신학생 장학금 후원… 2009년부터 결실
입력 2017-02-23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