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엔터스포츠] 커브로 지운다, 4년 전 흑역사

입력 2017-02-24 05:00 수정 2017-02-26 12:56
김인식 감독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 마무리 임창용이 지난 17일 일본 오키나와 구시카와구장에서 마운드로 날아오는 공을 잡기 위해 뛰고 있다. 임창용 뒤에 있는 선수는 차우찬. 대표팀은 4년 전 제3회 대회 때의 참패를 딛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KBO 제공
'2013년의 흑역사를 씻어라.'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이제 불과 열흘 앞(3월 6일 개막)으로 다가왔다. 한국은 WBC 1, 2회 대회까지 승승장구했다. 1회 대회 4강, 2회 준우승. 야구계와 팬들은 자연스럽게 2013년 3회 대회 때는 이전 대회 이상의 성적을 머릿속에 그렸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1라운드 예선 탈락. 언제나 한국이 주연일 것으로 생각했던 WBC에서의 첫 수모였다. 이달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하며 손발을 맞췄던 우리 대표팀의 목표는 하나였다. 2013년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재도약하자는 것이었다. 4년 전 대회를 분석한 뒤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커브를 던져라

코칭스태프는 직구와 슬라이더 대신 커브를 잘 던지는 투수를 우선적으로 낙점했다. 지난 17일 대표팀이 스프링캠프를 차린 일본 오키나와 구시카와 구장에서 만난 선동열 투수코치는 “국제 흐름 자체가 완급 조절로 가고 있다. 커브의 각도가 커야 통한다”고 역설했다. LA 다저스의 클레이턴 커쇼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코리 클루버가 대표적이다. 송진우 투수코치도 똑같은 말을 했다. 그는 “요즘에는 옆으로 휘는 공은 한계가 있다”며 “선수들에게 커브 연습을 자주 시키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과 1라운드에서 만나는 네덜란드와 이스라엘은 메이저리거가 다수 포함됐다. 빅리그 선수들은 직구와 슬라이더 공략에 능하다. 메이저리그 투수들보다 구속이 느린 한국 투수가 이런 공을 던질 경우 당할 가능성이 높다. 3회 대회 때가 그랬다. 1라운드 첫 경기 네덜란드전에서 한국은 직구와 슬라이더가 좋은 KIA의 윤석민을 선발로 내세웠지만 4⅓이닝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커브에 능한 장원준(두산)과 양현종(KIA), 장시환(kt) 등이 이런 이유로 대거 엔트리에 포함됐다. 이날 만난 양현종도 커브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양현종은 “강타자를 상대로 커브를 더 빠르게 던져야 할 것 같아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술했던 마무리도 당시 대회 패인으로 지목됐다. 4년 전 네덜란드 경기에서 불펜이 3점을 더 내주며 0대 5로 완패했다. 대표팀이 많은 비난을 무릅쓰고 도박으로 물의를 빚은 오승환(세인트루이스)과 임창용(KIA)을 합류시킨 것도 이를 고려해서다. 응원차 오키나와로 온 박찬호는 “4년 전에는 마무리가 많이 맞았다”며 “올해는 (불펜이) 많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강속구에 대처하라

타격 쪽에선 큰 단점이 없다는 게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평가다.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와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가 합류 못한 점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힘 있는 타자와 발 빠른 주자가 골고루 섞여 있다. ‘빅보이’ 이대호(롯데)의 합류도 큰 힘이다. 다만 빅리그 출신 투수들의 강속구에 대한 대처는 염두에 두고 있는 부분이다. 이순철 타격코치는 “우리 타자들이 모두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외국 투수들이 유인구를 던지지 않고 정면승부를 펼치는 경향이 강하다. 강속구 투수에 대한 적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타자들은 이를 위해 시속 150㎞ 이상의 공이 나오는 기계를 이용해 적응훈련을 하고 있다. 또 송 코치가 직접 배팅볼을 던졌다.



전지훈련 줄이고 경험 있는 코치진 나서라

훈련 일정과 코칭스태프 구성에도 변화를 줬다. 직전 대회 때는 전지훈련이 17일이나 돼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었다. KBO 관계자는 “4년 전에는 전지훈련을 너무 오래하면서 식사 문제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번에는 전지훈련 기간을 11일로 짧게 잡았고 거리도 우리나라와 가까운 오키나와를 선택, 선수들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소개했다.

KBO는 1, 2회 대회를 이끌었던 김인식 감독에게 다시 지휘봉을 맡겼다. 일부에서는 “또 김인식 감독이냐”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KBO는 야구 흥행에 직결되는 국제경기 성적을 위해서는 코치진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봤다. 역시 4년 전 실패를 통해 나온 결론이었다.

3회 WBC 대표팀을 지휘했던 류중일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은 첫 국가대표 사령탑을 맡아 상당한 부담감을 가졌다. 부담이 커져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맹훈련을 거듭했다. 과도한 훈련이 오히려 독이 됐다. 경험 부족으로 투수교체 타이밍을 잘못 잡는 문제점도 나왔다. 결국 최고의 성적을 거뒀던 김 감독과 투수교체의 귀재인 선 코치가 각각 8년, 11년 만에 재등판했다. 과연 대표팀은 반면교사의 달콤한 열매를 맺을까, 아니면 4년 전보다 더 강해진 상대팀에 또다시 고전할까. 결과는 10일 후면 밝혀진다.

오키나와=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