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고양이, 또 여제를 할퀴다

입력 2017-02-21 21:25
‘빙속 여제’ 이상화(왼쪽)와 숙적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 21일 일본 홋카이도현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역주하고 있다. 이상화는 37초70을 기록하며 2위에 올랐고, 고다이라는 37초39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뉴시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세계 1위인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31)는 선수로는 은퇴할 나이인 30대에 세계 최고수로 오른 보기드문 경력의 소유자다. 그의 별명은 ‘성난 고양이’. 별명에 붙은 사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때부터 스케이팅을 시작한 고다이라는 대학 시절이던 2005년 일본 학생 빙상 경기 선수권대회 500m와 1000m 2관왕, 이듬해 전일본 스피드스케이트 선수권 대회 1000m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일본 최고의 단거리 스프린터였다. 하지만 국제대회에선 달랐다. 주종목은 500m에서 참패를 거듭했다.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15위, 다음 대회였던 소치에선 5위에 그쳤다. 반면 한국의 ‘빙속여제’ 이상화(28·스포츠토토)는 500m에서 올림픽 2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당시만 해도 고다이라는 이상화에 견줄 실력이 안됐다.

충격을 받은 고다이라는 소치대회 직후인 2014년 2월 자비로 빙상 강국인 네덜란드로 2년 간 유학을 떠났다. 네덜란드 헤렌벤의 ‘컨티뉴’라는 프로 팀에 입단해 실력을 갈고 닦았다.

고다이라는 훈련 방법을 완전히 바꿨다. 우선 체력의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일본식 연습법을 버리고 실전 당일을 향해 서서히 집중력을 높여 나가는 네덜란드식 훈련법을 몸에 익혔다.

고다이라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일취월장했다. 특히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총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마리안네 팀머 코치의 도움이 컸다. 고다이라는 이전까지 스케이팅을 할 때 허리와 머리를 한껏 낮췄다. 이에 팀머 코치는 “성난 고양이(Boze Kat)가 되라”고 외쳤다고 한다. 상대를 위협하는 성난 고양이처럼 등을 구부리고 머리를 세워 몸의 중심을 높이라는 의미였다.

고다이라는 2년 내내 이 자세를 계속 연습했다. 고다이라는 “이전엔 힘으로만 얼음 위를 질주했지만 자세를 바꾸니 몸이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이를 통해 직선주로에서의 레이스 기술을 향상시켰고 여기에 자신의 장점이었던 코너링까지 더해지자 스피드가 훨씬 올라갔다. 코치들이 항상 그에게 ‘성난 고양이’를 외쳤고, 자연스럽게 이 단어는 그의 별명이 됐다.

고다이라는 네덜란드에서 음식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 유제품·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그에게 이런 성분이 많이 포함된 네덜란드 음식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반드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열망에 이를 감내했다. 고다이라는 “네덜란드어도 할 줄 모르고 식생활도 맞지 않았지만 목표를 이뤄야만 일본으로 돌아가겠다고 이를 악물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2년 후 고다이라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돼 나타났다. 올 시즌(2016∼2017) 자신이 출전한 6차례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500m 레이스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한때 그에게 거대한 산이었던 이상화도 넘어섰다. 지난 10일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500m에서 이상화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도 이상화는 번번이 고다이라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상화는 21일 일본 홋카이도현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경기에서 고다이라 나오와 진검승부를 벌였지만 아쉽게 패배했다. 고다이라는 37초39의 기록으로 1위, 이상화는 37초70으로 2위였다. 전날 1000m 경기에서도 이상화는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지만 고다이라의 벽에 막혀 메달권에 들지 못했다. 고다이라는 1000m에서 금메달을 수확하며 2관왕에 올랐다. 어느덧 이상화는 고다이라에게 도전하는 처지가 됐다.

30대에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고다이라와 설욕을 꿈꾸는 여제 이상화가 1년 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펼칠 라이벌전에 벌써부터 세계 빙상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