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궤변으로 北 김정은 감싼 정세현 전 장관

입력 2017-02-21 17:31
전 세계를 경악케 한 ‘김정남 암살 사건’을 우리 역사에 비유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북한의 잔악무도한 소행으로 드러나고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 “우리도 그런 역사가 있었다. 우리가 비난만 할 처지는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한반도 통일 정책을 총괄하는 주무부처 장관을 역임했던 인사로서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그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의 국정경험 조언 자문단 ‘10년의 힘 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터라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양상이다.

정 전 장관은 20일 오마이TV와의 인터뷰에서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해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것이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의 속성이고 권력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무자비한 일을 저지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패해서 망정이지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이 민주국가에서 일어나지 않았느냐”고 했다. 이어 “대선 때 (김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바짝 추격한 것이 죄가 됐다”며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발본색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에서 북한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유학생들을 잡아들인 동백림 사건, 김형욱 납치 사건, 김 전 대통령 납치 사건 등을 김정남 암살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도 했다. 마치 북한의 암살을 권력의 속성상 이해한다는 듯한 논리를 편 것이다. 어이없다.

특히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도 정적을 얼마나 많이 제거했나. 암살한 적도 있고 재판을 통한 합법적인 방법으로 제거한 적도 있었다”며 “김구 선생이 (암살당한 것도) 혐의는 그런 쪽으로 가고 있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백주대낮에 공항에서 공개적으로 이복형을 살해하고 고모부까지 처형한 김정은 정권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한 셈이다. 김정은이 김정남을 제거한 이유로 중국이 김정남을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자신의 안위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논리도 들었다. 반인륜적인 국제 범죄를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김정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식이다. 과연 대한민국 장관이었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 전 장관의 왜곡된 인식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