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리스크’가 한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만약 미국으로부터 시작되는 보호무역주의가 세계로 확산된다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는 재앙이다. 그러기에 최근 우리 정부와 언론은 ‘트럼프 리스크’로 불리는 미국발 보호무역주의 발동에 거의 경기(驚氣)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볼 여지가 있다.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첫째,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은 미국에 중요한 나라가 아닐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의 일차적인 타깃이 아니다. 트럼프의 주된 관심은 중국과 멕시코다. 따라서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이 있다고 한들 당장 가시화되지는 않는다. 중국에 대해서, 멕시코에 대해서 일정부분 성과를 거둔 이후에야 다른 국가들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둘째,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자가 아닐 수 있다. 트럼프가 싫어하는 것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그가 시니컬하게 반응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이 바로 다자간 FTA다. 멕시코의 경우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고 동시에 NAFTA로 인해 미국 시장과 동일한 시장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공장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트럼프가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아베가 트럼프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바로 달려가 TPP 체결을 위해 안간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처음 한 것이 TPP 폐기였다. 다른 나라에 좋은 일이 되는 무역협정을 싫어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한·미 FTA와 같은 양자 간 FTA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 표면적으로는 상품수지 쪽에서 한국이 미국에 대해 흑자를 보이고 있으나 주력 수출 품목인 농축산물 부문에서의 이익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관광, 유학, 지적재산권 등과 같은 서비스 부문까지 본다면 미국은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일부 품목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으나 한·미 FTA를 폐기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참고로 트럼프는 지금까지 한·미 FTA 재협상을 직접 언급한 적이 없다.
셋째, 트럼프는 미국 국익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고도의 정치행위일 뿐이다. 그의 말처럼 국익 우선이라기보다 실제로는 국민에게 보여줄 ‘성과’라는 아이템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성과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무르익는 기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들에게 더 극적이고 더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부르지 않았는데도 달려간 일본은 심각한 판단착오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중국이 트럼프의 생각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주는 것이다. 아직은 굽히지 않으면서 긴장감을 높여주고 어느 시점에서 극적 타결을 하는 것, 그것이 트럼프가 바라는 것이다. 현재 아무런 시그널도 없고 미국에서 큰 이슈도 안 되는 한·미 관계에서 우리 정부가 셰일가스를 도입하겠다는 등 먼저 설레발을 치는 수준 낮은 일본식의 보따리 외교를 왜 따라하는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중국의 행보를 보다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다들 트럼프 리스크로 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별것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해서다. 그렇다고 트럼프 리스크를 과소평가해도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준비는 철저히 하되 내 패를 보여주어서는 안 되며, 상대방 의중을 먼저 알아야 하고, 행동으로 들어가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경제시평-주원] 트럼프 리스크의 패러독스
입력 2017-02-21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