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진실을 왜곡시키는 세상… 음모의 실체, 치밀하게 파헤치는 ‘피고인’

입력 2017-02-22 00:00
안방극장을 점령한 SBS 월화극 '피고인'의 한 장면. 주인공 박정우를 연기하는 배우 지성은 가족을 잃은 아픔을 절절하게 그려내며 호평받고 있다. SBS 제공

많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절체절명의 궁지로 내몰린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좀 더 극적이다. 바로 SBS 월화극 ‘피고인’ 얘기다. 드라마를 이끄는 인물 박정우는 전도유망한 강력부 검사였다. 하지만 창졸간에 가족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방에 갇힌다. ‘피고인’은 박정우가 휘말린 음모의 실체를 짜임새 있게 풀어내며 올겨울 안방극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21일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방영된 피고인의 시청률은 21.4%를 기록했다. 서울 지역 시청률은 26.4%에 달했다. 시청률 ‘30% 고지’도 머지않은 분위기다. ‘피고인’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동시간대 드라마 ‘역적’(MBC) ‘화랑’(KBS2) 등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하는 일등공신은 박정우 역을 연기하는 배우 지성이다. 지성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한 인물을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그러진 얼굴과 시뻘겋게 충혈이 된 눈동자로 절망의 바닥을 헤집는 그의 연기는 단연 일품이다. 지성은 지난달 첫 방송을 앞두고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나도 아내와 딸이 있지만, 그들을 잃는다는 상상은 감히 하고 싶지 않다”며 “촬영을 하면서 눈물을 달고 살았다”고 털어놓기도 했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구성도 흥미를 끌어올리는 요소다. 박정우가 휘말린 음모의 실체가 매회 야금야금 드러나도록 만든 점은 시청자를 감질나게 만든다. 스토리 전개가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안방극장의 이목을 딴 데로 돌리게 만드는 수준은 아니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박정우를 교도소라는 제한된 공간에 두면서 나머지 인물들의 이야기를 긴밀하게 엮어내고 있다. 기존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구조”라고 평가했다. 이어 “안방극장에서 새로운 장르물을 보고자 했던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고 있다”며 “돈이 진실을 왜곡시키는 세상의 시스템을 흥미롭게 풀어낸 게 ‘피고인’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아쉬움을 표시하는 목소리도 없진 않다. 주인공이 기억상실증에 시달리고, 악역인 차민호(엄기준)를 재벌 2세이자 쌍둥이로 설정한 점은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는 “온갖 클리셰가 범벅이 돼있는 작품이다. 모든 것이 너무 뻔해 보이는 드라마”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도 “장르물 중에는 어렵게 느껴지는 작품이 많은데, ‘피고인’은 중간부터 봐도 이해가 되는 친절한 드라마”라며 “이런 요소가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총 18부작으로 지난주 반환점을 찍었다. 제작진은 첫 방송을 앞두고 “우리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앞으로의 성패는 박정우가 이끌어갈 복수의 스토리가 얼마나 설득력을 갖출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